ART COLUMN · REVIEW
관계항, 이우환을 만나다.
Lee Ufan
이우환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단색화의 거장인 이우환을 소개하는 타이틀은 누구보다 화려하다.
일본 모노파의 창시자, 아시아 최초 파리 국립 미술관 개인전 개최,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개인전 개최, 프랑스 퐁피두 센터 개인전 개최, 한국 생존 작가의 작품 중 가장 비싼 가격으로 거래된 작가(*2021년 서울옥션에서 진행된 경매에서 그의 작품 ‘동풍(1984)’은 30억 원을 돌파했다.), 2022년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 연말 결산 기준 한국 경매 낙찰 총액 1위의 타이틀까지 모두 이우환을 가리킨다.
4 Apr – 28 May 2023, Installation l Lee Ufan, Youtube : Kukje gallery
“회화나 조각만이 작품은 아니다. 보고 싶은 것은 모두 작품이다. 벽의 낙서도 회화이고 대지의 퍼짐도 회화이며 상상의 화면도 회화이다. 도시의 건물도 조각이고 산의 바위도 조각이며 문득 떠오른 관념도 조각이다.
그러나 이들은 방치된 채 자유로워 종잡을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은 방치된 채 자유로워 종잡을 수 없다. 사랑할 때는 아리따운 하나의 구속을 강요하게 되지 않던가. 더욱 깊은 교섭과 아득한 해방을 위해 세계를 잠시 갑갑한 장소에 붙들어매고 싶다.
비밀을 나누고 싶을 때는 캔버스 위에서 모두 함께 맞닿고 싶을 때는 광장 가운데서 아름다운 작품이야 이룰 수 없음을 알지만 비는 마음으로 자기를 단련하고 행위에 염력을 걸자. 온몸이 떨리는 만남을 갖고 싶어 눈길에 사랑을 담아 오늘도 회화와 조각의 짓거리에 애쓴다. “
– 이우환 (여백의 예술 中, 이우환 지음) –
국제갤러리 1관(K1) 이우환 개인전 《Lee Ufan》 설치전경 ⓒ Ufan Lee / ADAGP, Paris – SACK, Seoul, 2023, Photo : 김새슬
지난 2년간 한국 미술시장에 돌풍이 일었을 때 그 중심에는 단연 이우환이 있었고, 이우환으로 말미암아 한국미술은 세계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냈으며 전 세계인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우환은 일본에서 1960년대 ‘모노하(物派)’라고 불리는 전위미술 운동을 이끌며 시작되었다. 일본어로 ‘모노(物)’는 물건을 뜻하는데, 모노하는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개입을 최소화, 실제 사물을 그대로 ‘제시’하는 것이다. 이우환은 1969년 모노파의 대표적인 작가 세키네 노부오를 다룬 평론인 ‘존재와 무를 넘어서’를 발표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후 모노파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인물로서 큰 영향을 끼쳤다. 사물들의 조화와 관계 또는 사물과 시공간의 관계를 주목하려는 운동으로 그의 〈관계항(Relatum)〉 시리즈를 보면 모노하 정신이 잘 드러난다.
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가는 이우환은 국내에서 12년 만에 맞는 작가의 개인전으로 돌아왔다. 이번 전시는 이우환의 1980년대 작품부터 근작까지 아우르는 조각과 드로잉을 선보였다.
이우환의 회화 작품은 시기별로 작품의 스타일에 확장성을 부여한다. 1970년대에 평면 작업인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시리즈로 시작해, 1980년대에는 ‘바람’ 시리즈,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조응’, ‘대화’ 시리즈로 작업을 이어 나가며 점, 선, 여백의 관계에 집중했다.
작가는 호흡을 조절하고 몸 안에 있는 리듬을 느끼면서 캔버스 위의 어떤 지점에 붓을 내려놓는다. 그런 다음 첫 번째 흔적에 응답하면서 자연스럽게 붓을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자 한다. 그러면 필연적으로 또 다른 장소가 붓을 부른다. 바둑판에 한 수 한 수 돌을 놓는 것처럼 긴장으로 가득 찬 상황이 단계적으로 창조된다고 말한다.
국제갤러리 1관(K1) 이우환 개인전 《Lee Ufan》 설치전경 ⓒ Ufan Lee / ADAGP, Paris – SACK, Seoul, 2023,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그의 조각들은, 그가 1956년에 일본으로 이주해 전위적인 미술 운동인 모노하를 주도하기 시작했던 1968년과 동일한 연도에 처음 제작한 이래 오늘날까지 꾸준히 작업을 이어 온 〈관계항(Relatum)〉 연작을 중심으로 한다.
국내에서는 조각보다는 회화를 중심으로 작가의 작품이 소개되고 거래되었지만, 이번 그의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1980년대부터 신작에 이르기까지 6개의 조각과 4개의 드로잉을 선보인다.
국제갤러리 1관(K1) 이우환 개인전 《Lee Ufan》 설치전경 ⓒ Ufan Lee / ADAGP, Paris – SACK, Seoul, 2023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1968년에 조각품으로 시작된 <관계항(Relatum)> 시리즈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으며, 이 조각 작품들을 통해 모노하의 아방가르드 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시작했기에, 국내 관람객에게는 12년 만에 작가가 추구하는 작품 세계의 본질을 알아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라툼(Relatum)은 쉽게 정의할 수 있는 ‘관계’와는 다른 ‘관계’를 의미하지만, 작품의 개별 요소가 어떻게 유동적인 관계에 있고 그 맥락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위치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탐구하는 관계를 의미한다. 이처럼 자연을 상징하는 ‘돌’, 산업사회를 상징하는 ‘철판’ 등의 요소들과 함께 관계로서 작품의 공간에 직접 개입하는 관객은 두 사물 사이의 대화의 일부를 느끼거나, 그들의 대화를 조용히 관찰함으로써 공존에 대한 생각을 성찰하게 된다.
국제갤러리 2관(K2) 2층 이우환 개인전 《Lee Ufan》 설치전경 ⓒ Ufan Lee / ADAGP, Paris – SACK, Seoul, 2023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조용한 전시장 속 철판과 돌 그리고 조명만이 우리를 맞게 되는데 이를 바라보는 관람객의 입장에서는 다소 어렵고 당황스럽게 느낄 수 있지만, 물질 사이의 관계를 통해 공간 속 나의 존재와 내 삶의 관계되는 것들을 잠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조용한 갤러리에서 잠시 머리를 식히며 명상에 빠지는 좋은 시간이었고 만남이었다.
부산 이우환 공간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계속해서 더욱 자주 이우환의 평생의 실천의 기초가 되는 웅장한 내러티브를 경험하고 감상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부디 다음 만남이 10년 뒤가 아니기를 바라며.
전시 안내
전시 제목 : 《Lee Ufan》
전시 장소 : 국제갤러리 서울 K1, K2
전시 기간 : 2023년 4월 4일(화) – 5월 28일(일)
관람 안내 : (사전예약제) 월요일-토요일 / 10:00 – 18:00, 일&공휴일 / 10:00 – 17:00
필자 김새슬은 중국 상하이 교통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상하이 대학 미술학부에서 예술학이론 석사과정을 졸업하였다. 상하이파워롱뮤지엄과 조선일보미술관에서 근무하였으며, 미술경제와 미술산업에 대해 고민하며 글을 쓴다. 현재 롯데백화점 아트컨텐츠실에서 근무하며 아트페어와 전시기획 등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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