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TOUR · GALLERY
Do and BE
TAVERES STRACHAN
타바레스 스트라찬
PERROTIN SEOUL
페로탕 서울은 작년 처음으로 열린 프리즈 서울에서 큰 호응을 얻은 뉴욕 기반 작가 타바레스 스트라찬의 아시아 첫 개인전 《Do and Be》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아프리카 대륙의 유구한 역사와 고대 문명과의 관계, 테크놀로지에 대한 작가의 오랜 관심사를 반영한 세라믹 작품이 처음으로 소개된다.
이와 더불어 이번 전시는 지난 20여년에 걸친 광범위한 연구와 실제 조사를 바탕으로 기념비적 규모의 야심찬 프로젝트를 실현한 타바레스 스트라찬의 작업에 대한 자아 성찰적 관점을 제시한다
Tavares Strachan Self Portrait (Space Helmet), 2023, Ceramic,two parts Overall dimensions, 90x60x60cm
수십억 년 전, 원시 상태에 놓인 별 안에서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의 기본 요소인 산소, 탄소, 질소가 융합되었다. 이 원자들은 쇠락해 죽어가는 별들의 격렬한 폭발로 인해 영겁의 세월을 거쳐 우주 전역으로 흩어졌다.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1934-1996)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별의 물질로 이루어졌다. 우리는 우주가 스스로를 알아가는 한 방법이다.”
Tavares Strachan, Self Portrait as Exploding Galaxy, 2023, Oil, enamel, pigment, and museum board on acrylic, two panels Overall dimensions, 182.9×182.9×5.1cm
스트라찬의 <Self Portrait as Exploding Galaxy>(2023)는 붉은 색의 우주 먼지 구름 사이에 군집을 이룬 천체를 두 개의 패널 위에 묘사한 작품으로, 칼 세이건의 이러한 말을 떠올리게 한다. 이 작품을 스쳐가듯 멀리서 보면 망원경으로 본 모습을 포착한 것이라고 착각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이런 환영은 다른 환영으로 대체된다.
빛을 내는 점을 보여주는 듯 보이는 원은 그 너머를 엿보는 구멍과 같은 것으로, 그 틈 사이로 빈 십자 말 풀이 조각, 텍스트가 쓰인 종잇장, 흰 올빼미 그림 등이 드러난다. 이러한 ‘초상화’에서 보이는 별과 자아의 결합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원자의 기원을 가리키는 듯하다. 그러나 모호하게 그려진 회화적 요소들과 그림 안에서 스트라찬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작품을 수수께끼처럼 만든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TERAVAS STRACHAN 개인전 《DO and BE》 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PERROTIN SEOUL
알지 못하는 것, 더 나아가 보지 못하는 것은 스트라찬의 다원예술 작업에서 형식적, 개념적으로 필수적인 부분이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바하마 출신의 작가는 지난 15년 동안 먼지 쌓인 기록 보관소와 먼 땅을 누비며, 소외된 역사를 발견하고 세상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구축하는 한계를 직시해 왔다.
2004년, 스트라찬은 흑인 극지 탐험가 매튜 헨슨(1866-1955)의 발자취를 따라 알래스카의 북극 지대로 탐사를 떠났고, 여기서 4.5톤의 얼음덩어리를 발굴한 뒤 페덱스를 통해 나소에 있는 자신의 옛 초등학교로 운송했다. 또한 작가는 스페이스X와 협력한 작업에서 우주 비행 훈련을 받다 지구 대기권을 벗어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난 최초의 흑인 우주비행사 로버트 헨리 로렌스 주니어(1935-1967)를 향한 가슴 아린 헌사를 보냈다. 작가는 미라를 만들 때 썼던 카노푸스의 단지 위에 이 우주 비행사의 흉상을 얹은 인공위성 조각 작품 (2018)을 통해 마침내 그를 우주로 보냈다.
TERAVAS STRACHAN 개인전 《DO and BE》 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PERROTIN SEOUL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백과사전(The Encyclopedia of Invisibility)> (2018-)은 스트라찬이 펼치는 다양한 작업의 핵심이다. 이는 매튜 헨슨, 로버트 헨리 로렌스 주니어 등 업적을 인정받지 못한 선구자들에 대한 사실을 비롯하여, 신화와 희귀한 생물, 갖가지 불가사의에 대한 2,400페이지 분량의 사전이다.
그러나 스트라찬의 광범위한 지식 수집이 맺은 결실은 역설적인 조건을 통해 접할 수 있다. 즉, 이 사전의 내용은 실제로 읽을 수 있는 책의 형태를 ‘제외한’ 다양한 형태로 제시된다. 우아한 가죽으로 제본된 이 책은 조각 작품으로 존재하며, 귀중한 유물처럼 진열 케이스에 넣어 전시된다. 스트라찬의 콜라주와 그림에는 읽어내기 어려운 단편적 정보가 등장하며, 런던의 마리안 굿맨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 《In Plain Sight》(2020)에서는 전시 공간을 배회하는 퍼포머들이 여기서 발췌한 내용을 낭독하기도 했다.
이처럼 의도적으로 정보의 배포와 전시를 제약하는 방식은 관객이 작품 주변을 걷게 할 뿐 아니라 작품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고, 대안적이고 다원적인 방법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처리하는 것에 대해 사유하게 한다.
TERAVAS STRACHAN 개인전 《DO and BE》 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PERROTIN SEOUL
스트라찬의 작품에는 자메이카의 활동가이자 사업가인 마커스 가비(1887-1940)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범아프리카주의의 옹호자로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마커스 가비는 자메이카 킹스턴에서 세계흑인지위향상협회와 아프리카공동체연맹을 설립했다. 이후 그는 뉴욕 할렘으로 이주하여 널리 유통되었던 『네그로 월드』 신문을 발행하는 한편 대서양을 횡단하는 해상 운송 노선인 블랙 스타 라인을 운영하기도 했다. 이 해운사가 1920년대에 배포한 광고 전단지를 보면 흑인 노동자들에게 “Do and Be(행동하고 존재하라)”고 권하는데, 스트라찬은 여기서 이번 전시의 제목을 차용했다.
이 문구는 유리구슬로 만들어진 동명의 커튼 작품에서 다시 나타나며, 하늘색 구슬로 글자를 새겨 커튼이 흔들릴 때마다 글자가 왜곡된다. 이는 장엄한 소재를 기발하게 뒤집은 것으로, 블랙 스타 라인의 주식을 매입하는 것을 개인과 집단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일과 동일시하는 열망의 수사법을 사용한다.
TERAVAS STRACHAN 개인전 《DO and BE》 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PERROTIN SEOUL
이 커튼 작업과 스트라찬의 백과사전 같은 출판물의 형식은 언어를 조각의 재료로 활용하는 접근 방식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작가는 다른 예술 매체를 통해서도 텍스트의 조작성이라는 개념을 탐구한다.
<Jet>연작은 잡지 표지에 칠하기를 통해 편집과 생략을 시도하는 작품이다. <What Image>(2022)에서는 사파이어 성운이 여배우 다이애나 샌즈(1934-1973)를 거의 완전히 가린 모습을 보여준다. 색이 올라가지 않은 원을 통해서는 그녀의 머리 장식과 장밋빛 분홍색을 띤 의상을 부분적으로 엿볼 수 있다.
농담이자 도발로 해석될 수 있는 ‘WHAT IMAGE’라는 문구를 제외하면 잡지 표지에 있는 문구들 역시 그와 비슷하게 가려져 있다. 이처럼 다채로운 혼돈으로부터 무엇을 찾아낼 수 있는지 살펴보자. 반면 <Changes>(2022)는 표지 스타 제임스 브라운(1933-2006)을 전경에 내세우면서 원래의 배경은 지워버린다. 잡지의 제목 외에 남아 있는 유일한 텍스트는 불타는 우주의 소용돌이 안에서 녹색 슬라임 글꼴을 하고서 불길하게 떠다니는 ‘CHANGES’라는 단어뿐이다.
Tavares Strachan Self Portrait: Loyalty to the Past (Blue Guro Mask), 2023, Oil, enamel, pigment, museum board, brass armature, and Guro mask (Ivory Coast) on acrylic, two panels Overall dimensions, 182.9×182.9×5.1cm
이미지, 텍스트, 맥락의 연관성을 깨고 재구성하는 작업은 <Self Portrait: Loyalty to the Past (Blue Guro Mask)> (2023)와 같은 대형 회화에서 압도적인 힘을 발휘한다. 두 개의 패널로 이루어진 이 작품에는 스트라찬 세계관의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천문도,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백과사전>에서 발췌한 페이지, 토고 여성을 묘사한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우표, 작가가 직접 조각한 미국 노예제도 폐지 운동가 해리엇 터브먼(c.1820-1913)의 호피 무늬 흉상 등 여러 요소가 겹쳐져 오랜 시간 이어진 작가의 예술적 관념들을 암시한다.
왼쪽 패널에는 우주복을 입은 스트라찬의 사진이 있는데, 이는 예전에 <Orthostatic Tolerance>(2006-2008)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러시아에서 우주비행사 훈련을 받으면서 촬영한 사진이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구로(Guro)족 가면을 겹친 그림 아래에 숨겨져 있다. 이 그림은 풍부하고 복합적으로 쌓인 단서를 통해 무한한 퍼즐을 연상케 한다. 더욱이, 이 작품에서는 인종 차별주의와 노예 제도의 잔인함이 우주여행의 경이로움과 충돌하기에 해석하기가 쉽지 않다.
TERAVAS STRACHAN 개인전 《DO and BE》 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PERROTIN SEOUL
스트라찬의 미학적, 개념적 방법론은 직관적이고 객관적인 해결책에 본질적으로 저항한다. 그렇게 하는 대신 특정 인물, 실체, 현상을 어떠한 맥락에서 어떻게 인식하고 표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가정을 해체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는 우리가 작가와 예술을 만나는 방식으로까지 확장된다.
스트라찬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이처럼 다양한 요소로 구성된 자화상이 ‘자아의 발현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일어난다’는 그의 신념에서 비롯된 장르의 확장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저는 자화상을 재현 개념으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손이나 두뇌의 연장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초상화 한 점으로 대체 어떻게 한 사람이 꿈꾸고, 마주하고, 만들어낸 삶의 모든 충만함을 아울러 담을 수 있을까?
스트라찬의 자화상은 그가 만든 강렬한 작품들의 여러 요소를 더 도전적이고 예상을 벗어난 방식으로 재조합하는 실험으로 보인다. 이는 그의 작업에 활력을 불어넣은 다양한 행동(doing)과 존재(being) 방식을 보여준다.
Tavares Strachan, What Image, 2022, Jet magazine, oil, enamel, pigment, acrylic, 19.1×13.3cm
자아의 발현에 대한 스트라찬의 인식은 새로운 자화상 연작에서 그가 작품 활동 전반에 걸쳐 보여준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과 연결된다. 스트라찬의 자화상 가운데 많은 작품이 얼굴을 가리고 있거나 생략하는 것 역시 아마도 그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원형 캔버스에 그려진 회화 <Self Portrait as Galaxies Together>(2023)에서는 생물학자 찰스 다윈(1809-1882), 재즈 뮤지션 마일스 데이비스(1926-1991),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354-430)를 그린 이미지가 별처럼 빽빽하게 흩어져있다. 스트라찬에게 이러한 인물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의미가 없다. 이들은 진화, 문화, 영성과 같이 우리가 공유하는 문명의 유산을 상징한다.
Tavares Strachan, Changes, 2022, Jet magazine, oil, enamel, pigment, acrylic, 19.1×13.3cm
스트라찬의 세라믹 작업 역시 시간의 광활함을 설명할 수 있는 지구 생명체를 향한 더 넓은 관점을 탐구하려는 그의 열망을 반영한다.
흙으로 집을 짓고 물건을 만들었던 우리의 조상들은 언젠가 그들이 쓴 것과 같은 재료가 우주왕복선의 단열재로 쓰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스트라찬은 “저는 흙의 단순함과 복잡함에 매료되었습니다.”라고 말하며 “이를 통해 자기 자신, 그리고 자신과 환경의 관계를 이해하고자 합니다.” 라고 덧붙인다.
스트라찬의 세라믹 작업은 그의 회화와 마찬가지로 자화상을 독특한 개념으로 표현한다. 여러 항아리의 뚜껑에 침착한 표정을 한 스트라찬의 얼굴이 표현되어 있는데, 한 항아리에서는 우주 헬멧을 쓴 모습인가 하면 다른 항아리에서는 동그란 모양의 아딘크라헤네 상징으로 장식되어 있다.
<Self Portrait (Polar Bear)>(2023)에서는 스트라찬의 두상을 포효하는 동물의 입 속에 넣음으로써, 기존의 인식을 무너뜨린다. 항아리의 바닥은 잉크처럼 짙은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으며, 흰색과 녹슨 색으로 이뤄진 별자리는 천상의 찬란한 광채를 자아낸다.
ⓒ PERROTIN SEOUL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