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COLUMN · MARKET
갤러리스트가 공개하는
#전시기획 과정 A to Z
LUV CONTEMPORARY ART
갤러리 공간을 운영하다 보면 가끔 “무료 전시인가요?”라고 묻는 방문객의 질문을 받게 됩니다.
박물관·미술관과 달리 왜 갤러리는 입장료를 받지 않을까요? 바로 갤러리의 주 고객이자 작품을 구매하는 컬렉터가 있기 때문이죠.
미술관은 교육이나 연구·학술적 목적의 비영리적 성격을 띠는 반면에, 갤러리는 하나의 사업체이며 비 제도권이기 때문에 갤러리 오너의 취향이나 경영철학이 반영됩니다. 그 덕에 제도권에 있는 전시에 비해 공공성의 성격을 띠지 않고, 작품의 전시·판매로 인한 수익구조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갤러리스트는 작가를 발굴하고 미술 사조를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이윤 추구 이상으로 작가의 작업 세계를 잘 전달할 수 있는 전시 공간을 조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중에게 새로운 예술 세계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고, 작품을 더 멋지게 보이도록 하는 것은 결국 갤러리의 기획력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갤러리에서 이루어지는 전시기획 과정을 함께 자세히 살펴볼까요?
✔ 전시 콘셉트, 기획서 만들기
갤러리 전시 일정은 보통 사전에 1년 간의 전시 일정을 계획합니다. 전시 기간은 짧게는 2주에서 2-3 개월 간 진행됩니다. 이는 갤러리의 성격에 따라 상이하지만 미술관이나 박물관보다는 그 호흡이 대체적으로 빠른 편입니다.
러브컨템포러리아트의 전시 기획중인 모습, 사진 제공: 러브컨템포러리아트
우선 작가 섭외 상태, 즉 소속 작가의 전시를 기획할 경우에는 신작이 나오는 기간을 고려해 적어도 6개월에서 1년 전에 미리 일정을 정한 뒤, 전시 주제 및 콘셉트를 바탕으로 기획서를 작성합니다. 기획서의 세부 내용에는 전시 일정(전시 기간, 관람 시간), 전시 의도 및 콘셉트, 출품작, 홍보 계획, 예산, 설치 및 운송 계획이 포함됩니다.
경우에 따라 시기적절한 주제를 먼저 정해놓은 뒤, 그에 맞는 작가를 맞춰 섭외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주제에 맞게 작가와 출품작 수를 정하고, 동시대의 어떤 작가들과 예술성을 보여줄 것인지 검토합니다.
러브컨템포러리아트 전시 VIP 도슨트 행사 전경, 사진 제공: 러브컨템포러리아트
기획 단계에서 전시 콘셉트에 맞춘 디자인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요즘 같은 비주얼이 대세를 이루는 시대에는 전시를 압축해서 보여줄 수 있는 이미지의 중요도가 보다 높아지고 있죠.
메인 전시 포스터는 갤러리 입구부터 각종 보도자료 및 SNS에 업로드되고, 전시의 콘셉트를 각인시킬 수 있는 중요한 이미지이기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합니다.
✔ 작가 섭외
작가 섭외를 위해서는 전시 기획서를 첨부한 제안서를 작가에게 직접 보내거나, 작가의 소속 에이전시로 발송합니다. 사전에 작가가 독립적으로 활동하는지, 소속된 화랑이 있는지 사전에 꼭 체크하는 것이 좋겠죠. 작가 섭외를 위해서는 평소 다양한 아트페어나 전시를 다니며, 미술시장의 맥락을 늘 예의주시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작가를 서치해야 합니다.
✔ 계약서 작성
작품 운송 시 작성되는 작품 인수증 · 작품 반출증 예시, 출처 : 화랑 운영 및 미술품 유통 가이드북 / 저: (사)한국화랑협회
참여 작가와 전시 일정이 확정되면 계약서를 작성하여 양측 서명 후 각각 한 부씩 보관합니다.
계약서의 세부 내용에는 포장 및 운송, 분실, 도난, 파괴, 작품 가격 책정, 판매대금 지급, 중개 수수료, 전시 및 홍보, 전시 이후 화랑의 위탁 기간 및 보관 기간, 작품 반입, 반출 등에 대한 협의 사항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계약서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적인 약속을 지키고 진심을 다해 쌓아온 신뢰가 더 큰 힘을 지니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작가 작업실 방문
작가 작업실에 직접 방문한 러브컨템포러리아트 갤러리스트의 모습 (좌) Roman Manikhin Studio in Berlin (우) Kima Studion in Tokyo, 사진 제공: 러브컨템포러리아트
갤러리스트로서 작가의 작업실에 초대되어 신작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다는 것은 참 설레는 일입니다. 방문했을 때 작가가 그린 세계를 조금 더 면밀히 들여다보고 출품작을 선별해 진행될 전시의 청사진을 그려보는 과정은 필수입니다.
전시 준비 중에도 틈틈이 작가와 연락해 안부를 묻고 전시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하고 이는 양질의 전시 퀄리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갤러리스트는 작가와 갤러리의 파트너십을 위해 작가와 늘 소통하고 공감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 전시 자료 준비
보도 자료 작성 및 홍보물 제작을 위해 작가로부터 작품의 고화질 촬영 이미지, 작가 프로필, 작가의 작업 노트 등 필요한 각종 자료를 받습니다. 이를 통해 전시 서문, 작가 평론, 보도자료를 작성한 뒤, 국내뿐 아니라 해외 홍보를 위한 영문 번역을 위해, 전시 한 달 전에는 자료 준비가 완료되어야 합니다.
전시 VIP 프리뷰 현장의 모습, 사진 제공: 러브컨템포러리아트
전시 기획의 과정에서 마케팅과 홍보는 전시의 성과를 좌지우지할 만큼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렇기에 오늘날의 갤러리는 시대의 트렌드에 맞게 온·오프라인으로 진행하며 갤러리만의 전략과 영업 비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전시 오픈 약 1-2주 전에는 미술 기자 및 미술 전문지에 전시 보도 자료를 배포하는데, 이때 최근 새로 생겨난 각종 SNS 미술 플랫폼에 자료를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러브컨템포러리아트 전시 리플릿 이미지, 사진 제공: 러브컨템포러리아트
리플릿, 엽서, 도록 등 전시 콘셉트에 맞게 홍보물을 인쇄하고, 이는 초대장 역할로서 갤러리의 기존 고객들에게 사전 발송합니다. 뿐만 아니라 전시를 알리는 문자, 뉴스레터를 발송하고 각종 SNS 및 홈페이지에 새로운 전시 소식을 매력적으로 업데이트하여 갤러리의 호감도를 높입니다.
이외에도 작가 브랜딩이 돋보일 수 있는 굿즈를 제작해 판매하거나, 기존 고객에게 선물하기도 합니다. 이는 잠재 고객을 확보하고 새로운 팬을 유입시키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전시 VIP 프리뷰 현장의 모습, 사진 제공: 러브컨템포러리아트
오프라인 홍보로는 VIP 고객만을 대상으로 하는 아카데미나 행사를 열기도 하고 전시 프리뷰 일정을 따로 만들어 고객이 작품을 구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등 갤러리마다의 차별화된 아이디어와 전략이 필요합니다.
✔ 작품 입고·설치 및 전시장 조성
작품 입출고는 보통 미술품 전문 운송 업체를 이용합니다. 혹여 이동 중 손상은 없는지 작품 포장 개봉 직후, 작품의 상태 사진을 촬영하며 작품의 현상태 체크를 바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작품 설치는 기획 의도에 맞게 구상도를 따라 작품을 설치하는데, 필요에 따라 작품의 분위기에 맞게 벽을 도색해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합니다. 이때 작가와의 회의를 통해 주력하고 싶은 작품을 고려하되, 갤러리 공간과의 조화 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전시 설치 현장의 모습, 사진 제공: 러브컨템포러리아트
또한 기획 의도에 따른 관람객 동선과 안전을 고려해야 하고, 바닥과 작품의 높이, 작품과 작품 사이의 간격을 유지해 배치해야 합니다. 작품 수와 색감에 따라 조명을 준비하고 작품이 돋보이게 조명 위치를 조절하면 비로소 설치가 끝이 납니다.
이외에도 전시 기획 소개 글과 전시 정보에 대해 시트지 작업을 통해 공간을 더 다채롭게 꾸미고, 방문객들을 위한 전시 소개 및 작가 정보, 작품 배치도를 전시 공간에 비치해 놓습니다. 작품 가격 리스트의 경우 모두에게 공개하거나, 요청 시 직원에게 따로 안내 받을 수 있습니다.
러브컨템포러리아트 전시 전경 모습, 사진 제공: 러브컨템포러리아트
✔ 전시 마무리
전시가 끝나면 판매된 작품은 인보이스와 보증서를 동봉하여 안전하게 포장한 뒤 고객에게 배송됩니다. 작품의 포장 시, 갤러리의 브랜딩을 전할 수 있는 제작 박스나 각종 포장재를 사용한다면 보다 전문성이 더해지겠죠.
정성스럽게 포장된 판매 작품의 모습, 사진 제공: 러브컨템포러리아트
구매한 작품 사이즈가 크거나 직접 설치가 어려운 경우에는 미리 아트 핸들러를 통해 설치를 진행합니다. 이때 작품의 안전한 설치를 위해, 고객이 설치할 공간의 벽 소재를 미리 숙지해 핸들러에게 전달하는 것이 좋습니다.
작가와는 계약서에 따라 수익을 분배하여 작품 결제를 진행하고 세무 처리를 합니다. 갤러리 공간에는 작품을 철거 후 새로운 그림이 들어올 준비를 위해 구멍 난 벽을 메꾸고 새로 페인트칠을 하여 기초 공사까지 끝나야 비로소 전시가 마무리됩니다.
✔ 성과 보고서
전시 이후, 갤러리스트는 관람객 수, 매출, 홍보 효과 등을 수치화하여 정리하는 성과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이를 통해 전시를 되돌아보고 미흡했던 점이나 개선할 점을 체크해 보고, 이를 다음 전시에 반영한다면 갤러리의 방향성과 발전에 큰 도움이 됩니다.
러브컨템포러리아트 전시 후 제작된 성과보고서, 사진 제공: 러브컨템포러리아트
전시 과정에서의 모든 갤러리의 규모와 성격에 따라 일부 과정은 생략되거나 강조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이처럼 전시는 생각보다 많은 절차와 수고가 따르기에 갤러리스트들에게는 많은 것들을 조율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능력이 요구됩니다. 특히 모든 과정이 여러 사람의 이해관계 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이 가장 중요하죠.
갤러리에서의 전시는 작가가 처음으로 신작을 대중들에게 선보이는 1차 시장의 역할을 하므로 갤러리의 궁극적인 목표인 ‘작품 판매’의 미션을 넘어, 대중에게 미술의 문턱을 낮추고 알리는 공적인 역할 또한 수행하므로 사명감을 갖고 전시를 기획해야 할 것입니다. 전시회는 비로소 관람객으로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죠.
이처럼 전시 결과에는 잠재 고객이나 팬 확보, 갤러리 이미지 고취 등 많은 비가시적 성과가 존재하므로 작품 판매의 흥행만이 반드시 성과의 전부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작품 판매하는 것에 있어 단숨에 빠른 결과를 기대하기보다는, 마치 작가의 손에서 비롯된 작품의 탄생이 오래 걸리는 것처럼 긴 호흡으로 멀리 바라보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필자 임규향은 회화과 학부를 졸업하자마자 20대에 미술시장에 뛰어들어 삼청동에서 러브컨템포러리아트 갤러리를 운영하고있는 10년차 갤러리스트이다. 다수의 국내외 동시대 작가를 소개하고 있으며 미술시장에서는 이례적으로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여 최초로 유튜브 온라인 미술시장을 개척했으며, 저서로는 미술시장에 생생한 이야기를 담은 《Sold Out》이 있다.
ⓒARTiPIO Editor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