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이니까 ③ - 소장의 기쁨

2016년에서 2018년까지 뉴욕에서 예술 경영 전공으로 대학원에 다닐 때, 학교 커리어 센터를 통해 다양한 미술 기관 이벤트에 자원봉사로 지원할 수 있었다. 그중 1994년에 4명의 화랑가가 모여 시작된 미국 최초 국제 아트페어인 아모리쇼 (The Armory Show)의 VIP 회원들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에 자원봉사로 참여했었다.
아트페어들은 제각각 VIP 회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특별 초대로 진행하는데, 아모리쇼 또한 화려한 프로그램을 자랑했다. 그중 난 The ARTnews 200 TOP Collectors(아트뉴스에서 매해 세계 최고 미술 컬렉터 200명을 추출한 명단)에 여러 해 포함되었었던 노부부가 자신들의 집에 초대하는 이벤트(Private Collection Visit)에 참여했었다. 아모리쇼의 VIP 예술 애호가들과 함께 개인 컬렉터의 특별한 집에서 그들의 소장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매우 값진 기회 같았다. 이벤트 당일, 받은 주소 대로 가보니 센트럴파크 바로 앞에 있는 아파트의 펜트하우스였다. 엘리베이터가 열리자마자 그들의 컬렉션 규모는 즉각적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문 앞 복도에 이미 그들의 소장품이 가득 전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부부는 나를 환영해 주며 VIP 회원들이 도착하기 전에 먼저 집을 구경시켜 주었다. 그리고 작품 리스트를 주었는데, 한 장에 약 150명 작가의 이름이 빼곡히 나열되어 있었다. 화장실부터 부엌, 거실, 파우더 룸, 여러 침실 등 각 방 별로 섹션이 구분되어 있었다. 거실 한복판에 있는 L 작가의 조각품을 시작으로, 천장 구석에 설치되어 있던 작은 조각품, 화장실에 걸려있는 M 작가의 드로잉 등 엄청난 컬렉션이었다. 작품도 작품이었지만, 작품을 설명해 주던 할아버지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자신이 모아온 작품 한 점 한 점 얼마나 소중한 마음으로 구매했고 소장하고 있는지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작품 중 전기 코드를 켜야 불이 켜지는 작품이 있었는데, 잘되지 않자 아내와 갸우뚱하며 계속 다시 시도해 보던 모습은 장난감을 켜보려는 아이처럼 순수해 보였다.
LA의 브로드 뮤지엄을 창설한 엘리 브로드(Eli Broad)가 말한 적이 있듯, 미술품 구매에 빠지면 점점 집착하다가 결국 중독되어 버리고, 더 이상 미술 없이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고 한다. 펜트하우스의 큰 평수에도 불구하고 집이 좁을 만큼 미술품으로 가득했던 노부부만 생각해 봐도 확 와닿는 말이다. 그 부부는 펜트하우스로 모자라 작품 전시 건물이 외각에 별도로 있었고, 외부 조형물을 위한 공원까지 소유하고 있었다. 그들에 대한 최근 기사를 보면 지금은 1,000점이 훨씬 넘는 작품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다양한 미술 이벤트를 다니게 되면, 미술품 컬렉터가 되는 것에 대해 환상이 생긴다. 그리고 이런 거대한 컬렉터를 만나게 되면 ‘그들이 사는 세상’임을 깨닫고 이번 인생은 글렀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오늘 소개하는 책 2권은 가능하다고 제언한다. 컬렉터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부’가 아니라 미술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흥미’임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1. 아무래도 그림을 사야겠습니다.

국민일보 논설위원 및 문화 전문 기자로 활동 중인 손영옥 저자는 2020년에는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으로 당선하면서 미술계 다양한 주제로 기사는 물론 여러 논문과 책을 출간하고 있다. 그중 자신의 첫 작품을 선택하고 구매하는 과정을 기록한 <아무래도 그림을 사야겠습니다>를 추천한다. 문화부 기자라는 본업의 특성으로 취재도 다니고 미술 관계자들과 인터뷰도 많이 진행하면서 시장에 대한 이해도도 남달랐을 것이며 그렇게 함께 보게 된 작품들을 통해서 안목도 생겼을 것 같다. 하지만 그녀 또한 미술품을 구매한다는 것은 남의 이야기로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매에 관심이 생긴 것은 작가들을 만나면서 였다고 한다. 유명 작가가 아니면 작품 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단지 미술이 좋아서 작업을 지속하는 그들의 열정이 좋았다고:
“그런 작가들을 만날 때면 묘한 감동이 일면서 어쩐지 한쪽 어깨를 내주고 기대라고 하고 싶었다.
마음으로만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래도 그림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내며’ 중
그렇게 그녀의 컬렉션을 위한 첫 작품을 구매해 보기로 그리고 과정을 책으로 엮기 위해 기록하기로 마음을 먹은 손영옥 저자는 여러 분야의 미술 전문가들을 만나 조언을 구하고 그를 바탕으로 자신의 첫 미술품 구매 예산을 500만 원으로 측정한다. 그리고 정해진 한도 내에서 구매할 수 있는 그녀의 첫 소장품을 위해 탐험을 떠난다. 스스로 ‘500만 원짜리 메디치’가 되겠다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그녀의 첫 작품을 향한 탐험기는 예산을 정하는 방법으로 시작해서 마지막에 작품을 구매하고 싶은 작가와 연락이 되면서 마무리된다. 한편의 소설 같기도 한 그녀의 컬렉팅 이야기 속에는 물론 입문자들이 많이 어려워하는 미술 정보 습득을 위한 가이드라인도 제시하지만, 국내 미술 시장의 문제점도 짚어 보기 때문에 미술품 소장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도와준다. 단지 작품 가격이 단시간에 상승하길 기대하는 그런 투자 매체가 아니라, 구매를 통해 미술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에 소속이 되고 나의 소비가 그 커뮤니티와 시장 전체에 줄 수 있는 영향도 다루기 때문에 아트 컬렉팅의 역할과 책임감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 책이다.
▶손영옥 저자와 함께한 아티피오의 아트토크#1 보러가기
2. 나는 샤넬백 대신 그림을 산다
윤보형 저

작년에 있었던 아모리 쇼를 OVR(Online Viewing Room) 통해서 작품을 구경하다가, 나의 컬렉션을 위한 두 번째 작품을 구매하게 되었다. 젊은 작가의 시리즈 작품 중 한점이었고,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대였다. 팬데믹으로 격리하면서 작업하게 된 시리즈였다고 했다. 대외 활동이 급격히 힘들어진 팬데믹 동안 작가들은 어떤 영감으로 작업하고 있을지, 암울한 시기지만 개인적으로 늘 궁금하고 은근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 작가의 작품에 관심이 갔다. 몇 달이 걸려 작품을 방에 걸 수 있었고, 그 순간 기분은 정말 짜릿했다. 당시 이 책을 읽지 않았지만, 스스로에게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다. “명품 가방 대신 정말 탁월한 소비였다.”
(쓰다 보니 길어진) 서론에서 설명한 컬렉터는 당연히 어마어마한 부자였다. 그런 컬렉터들을 보면 미술품은 엄청난 부자들의 전유물이라는 선입견이 더욱 강해질 수 있지만, 미술계에서 월급쟁이인 필자도 작품을 구매하게 된 것을 보면 소비의 선택에 따라 누구든지 컬렉터가 될 수 있다. 법무법인 변호사로 활동 중인 윤보형 저자는 우연히 그림 하나를 선물로 구매하게 되면서 미술품 컬렉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미술품을 구매하는 것에 대해 전혀 연관성이 없었던 그녀는 어떻게 그리고 어떤 컬렉터가 되었을까? 그리고 ‘아트테크’의 무슨 매력에 빠지게 된 걸까?
"나는 아트테크를 '자신에게 하는 최고의 투자'라고 생각한다.
미술 작품은 '아름다움'이라는 추상적 가치를 시각화하여
이 시대의 희로애락을 담아낸 응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미술 작품과 함께 호흡하고 대화하면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주어진 삶을 더 잘 살아낼 힘을 얻을 수 있다."
‘에필로그’ 중
10년 이상에 걸쳐 터득하게 된 그녀의 아트 컬렉팅 노하우와 전문적인 지식이 담긴 이 책을 통해 저자는 망설이고 있는 많은 아트테크 입문자에게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던져준다. ‘전설적인 월급쟁이 컬렉터, 보겔 부부’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책은 세상에는 다양한 컬렉터가 존재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컬렉팅이 가능함을 인지 시켜준다. 그리고 미술품 컬렉팅은 단순 재정적 이익뿐만 아니라 무형의 에너지도 가져다준다는 점을 책 전체에 전반적인 전제로 하고 있다.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에 비해 안전하고 수익률도 높으며 세금, 경제 정책 등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투자 종목이기도 하며, 예술 감상의 즐거움과 새로 알게 되는 지식의 기쁨 그리고 자연스럽게 생기는 개인의 예술적 안목과 취향까지, 단순 투자품을 넘어서 수익의 폭이 굉장히 넓고 다양하다. 부록으로는 미술 투자를 위해 알아두어야 할 세금 상식까지 포함되어 있어 굉장히 실용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샤테크도 좋지만, 집 전체 분위기는 물론 마음 한편까지 풍족하게 채워주는 아트테크에도 관심이 있다면 꼭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두 저자의 책을 보면 올바른 미술품 컬렉터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공부가 필수라는 것이 명확하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다. 주식 투자도 업계 공부를 부지런히 해야 하듯, 미술계 또한 매일 새로 뜨는 뉴스에 귀를 기울어야 하고 눈과 마음도 항상 열려있어야 한다. 올해 가을 KIAF와 함께 9월 2일부터 5일까지 코엑스에서 열리는 프리즈 서울은 국내외 미술시장이 주목하고 있는 하반기의 최고 하이라이트 이벤트 중 하나이다.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국제적인 아트페어인 만큼,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더 늦기 전에 이번 <아는 만큼 보이니까>에서 추천된 책들을 펼쳐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