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TOUR · FOUNDATION
양의숙 미학 산문 출판기념전 진품 고미술 명품 이야기
양의숙
Gana Art Center
©Gana Foundation for Art and Culture
특히 제주가 고향인 양의숙 대표는 제주의 민속 문화를 알리는데도 열심이었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태어난 뛰어난 독창성을 보여주는 제주문자도와 제주의 나무와 흙으로 빚은 여러가지 민속품들도 이번 전시에 함께 출품되는데, 육지의 문화와는 다른 투박하고 단순한 미감이 돋보인다.
이번 전시는 책에 수록된 작품들과 그에 얽힌 인생 이야기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글을 읽으며 전시를 감상하다 보면 박물관의 ‘유물’로 대하며 거리가 멀게 느껴졌던 작품들이 어느덧 삶 속의 친숙한가구로, 일상 소품으로 다가올 것으로 기대한다. 양의숙 대표가 평생을 바친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노력이 바로 이런 ‘거리 좁히기’ 였을 것이다.
양의숙의 책 속의 이야기와 가나아트센터에서 전시중인 주요 출품작을 이곳에서 먼저 만나본다.
개별 드로잉 작업은 우유를 마시고, 낮잠을 자고, 목욕을 하거나, 놀이를 하는 일상의 이미지적 표현들을 재현과 추상의 경계를 오가며 포착하고 있다. 원출처가 된 아동 문학은 전형적으로 활기찬 색감과 역동성을 담아내는 반면 작가는 불필요한 배경 묘사를 배제하고 순수한 선의 형태로 화면을 채워냈다. 친근하고 익숙한 이미지는 일련의 증류 과정을 통하여 공들여진 레퍼런스적 지표로 작업에서 구현되는데, 이는 대중과 세계 사이의 변수를 탐험하는 인지 발달 단계를 상기시킨다.
너 말들이 뒤주, 조선 19세기, 소나무, 39×27×27(h)cm 사진: 가나문화재단 제공
풍요를 담다_너 말들이 뒤주
“두 살 터울인 아이들이 초등학교에도 들어가기 전이었다. 당시 우리 집에는 쌀 너 말이 들어가는 뒤주가 있었다. 뒤주 중에는 좀 작은 편이다. 어느 날 아파트로 쌀을 팔러 온 아주머니에게 쌀 너 말을 샀다.아주머니가 돌아간 직후 뒤주에 쌀을 담아보니 아뿔싸, 쌀의 양이 꽤 모자라는 게 아닌가. 쌀 뒤주는 계량이 정확해서 오차가 있을 수 없다. 허겁지겁 뒤쫓아 나가 모자라는 양을 다시 확인하고 쌀을 더 받을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 뒤주 덕분이었다.”
제주 알반닫이, 조선 19세기, 나무에 무쇠장석, 53.5×28.5×36(h)cm 사진: 가나문화재단 제공
궤 이야기_반닫이
“나에게는 작고 사랑스러운 반닫이 한 점이 있다. 45년 전 친정어머니께서 딸의 산바라지를 위해서 제주에서 상경하면서 가져온 자그마한 알반닫이이다. 마흔이 넘어 나를 낳은 어머니는 나의 유일한 후원자이자 소소한 것도 투정부릴 수 있는 대상이었다. 관절도 안좋은데 먼 곳에서부터 그 무거운 것을 힘들게 끌고 왔다며 어머니에게 오히려 역정을 냈다. 옛 것을 보면 무조건 좋아하는 딸을 위해서 어머니가 어렵게 들고 온 알반닫이는 첫 아이가 태어나자 머리맡에 두고 배냇저고리와 기저귀를 담아두는 애틋하고도 사랑스러운 작은 공간이 되었다. 이 알반닫이는 부채꼴형 경첩의 양 옆에 커다랗게 마름모형 장석을 붙여서, 전라도 양식과는 다른 독특한 장식의 미감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고가의 반닫이는 아니지만, 나에게는 첫아이를 키우며 사용하던 추억과 친정어머니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에 결코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소중한 반닫이다.”
제주문자도, 19세기 말~ 20세기 초, 종이에 채색, 46×107cm (8폭 병풍)
극한의 미학_제주문자도
제주문자도는 육지의 것과는 사뭇 다르게 구성되어 있다. 육지의 문자도가 주로 중국의 고사에 얽힌 그림을 담아냈다면, 제주문자도는 내용이나 화면 구성부터가 매우 독보적이다. 화면을 위에서부터 세 면으로 분할한 3단 구성이 주류를 이루며, 3등분으로 나뉜 화면에는 각각 별도의 장면을 설정했다. 제주문자도에만 있는 독특한 구성이다.
화면의 상단에는 꽃이나 누각을 표현한 천상의 이미지와 이른바 천상과 지상을 연결해주는 넝쿨 식물들이 등장하며, 중단에는 유교의 여덟 덕목이 담긴 글자가 배치된다. 그리고 하단에는 현실의 생업을 반영하는 바다와 물고기(옥돔), 섬의 여러 식물들이 자리한다. 또한 문자도에 얽힌 상징적인 도상들은 사라지고, 화려한 색채와 장식적인 화조가 중심이 되어 화면을 채운다는 점도 특이하다. 도구에도 차이가 있다. 글자의 외곽선을 먹으로 그리고, 외곽선 내부에 꽃, 단청, 파도무늬 등을 넣었는데 못이나 대나무 꼬챙이, 돗자리를 짜던 풀을 사용해서 표현했다.
모필이 아닌 띠를 붓으로 삼은 비백飛白 효과도 제주문자도의 고유한 특성이다. 이는 현대 미술의 조형미를 방불케 한다. 비백이란 털붓 대신에 딱딱한 붓을 빠르게 움직여 먹이 종이에 골고루 묻지 않고 군데군데 스치게 함으로써 자잘한 선묘 모양의 흰 색이 그대로 드러나게 하는 운필법을 말한다. 제주문자도가 보여주는 담백하고 맑은 채색과 절제된 표현, 그리고 비백 효과는 제주에 재료가 부족한 탓에 고안해낸 일종의 자구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른바 ‘극한의 미학’인 셈이다.
섬이라는 고립되고 한정된 지역 환경과 문화 속에서 발전한 제주문자도. 육지로부터 떨어진 지리적 여건만큼이나 기존의 정형화된 틀에서 훌쩍 벗어난 일탈과 파격의 미는 제주문자도만의 매력일 것이다.
담배합, 조선 19세기, 무쇠와 금, 은, 구리, 15×15×9(h)cm 사진: 가나문화재단 제공
피보디 박물관에서 만난 담배합_박천 담배합
“원통형으로 자그맣게 만들어져서 당당하고 묵직하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품위가 있어서 좋다. 기개 있는 선비의 사랑방에 놓여서 주인의 품격을 아우르기에 제격이었을 것이다. 내가 소장한 담배합의 풍모이다. 처음에는 생경한 느낌이 들었다. 우아한 모양새가 내가 가진 담배합들 중에서도 색달랐다. 27년 전 미국에서 한국 고미술품 수집가 로버트 무어에게서 구입한 우리 담배합이다.
담배합은 궐련이 발달하지 않던 시기에 다듬은 잎담배를 담아서 집 안에 보관하던 합의 일종이다. 밀폐된 합은 담배 향이 증발하는 것을 막아줄 뿐만 아니라 담배 향을 숙성시켜주는 역할도 했다. 철판을 두들겨서 합을 만들고, 그 표면에 금, 은, 구리 등으로 문양을 새겼다. 이 담배합은 서울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전형적인 평안도 박천 지방의 담배합이다. 박천 지방은 장석을 섬세하게 투각한 숭숭이 반닫이로도 유명하다. 무쇠 소재의 만듦새에 익숙한 박천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남쪽에서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럴 때 우리는 단지 낯설다는 이유만으로 종종 외국의 것이라고 치부해버리는 일이 허다하다. 우리의 반쪽은 북에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약과판, 조선 19세기, 박달나무, 33×33×6(h)cm 사진: 가나문화재단 제공
먹는 것에도 의미를 담다_약과판
“정사각 나무판에 한자가 선명한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혹 장기판이 아닌가 싶은 이것은 도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일까? “
“「진품명품」에 처음으로 출연한 지 어느새 26년이 지났다. 1995년 3월 5일, 첫 방송 이후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오랫동안 프로그램에 출연하다 보면 희귀한 유물들도 종종 만나게 된다.
이 약과판 역시 그 중 하나였다.약과판과 다식판, 떡살에는 통상 부귀와 다손을 상징하는 물고기나 장수를 의미하는 국화문 등의 새겨져 있으면 높은 평가를 받는다. 형태는 대부분 기다란 직사각형이다. 그런데 이날 소개된 약과판은 정사각형의 나무판 전면에 스물다섯 개의 글자가 새겨진, 완전히 새로운 모습이었다.
나는 「진품명품」에 출연한 의뢰인에게 약과판의 출처를 물어보았다. 고미술에는 출처와 용도도 매우 중요하다. 그 이유는 유물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의뢰인은 경북 안동에서 전해 내려온 것이라고 하여 구입했다고 했다. 다시 한번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뒤집어보니 손잡이가 있었다. 문양을 파낸 부분에 재료를 채운 후 손으로 누르는 보통의 약과판 방식이 아니라, 판을 누르기 쉽도록 잡는 손잡이가 있는 것이다. 글자가 새겨진 부분은 살짝 볼록하게 만들어서 약과를 찍었을 때 글자가 선명하게 찍히도록 제작되었다. 150년 전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약과판이 방송에서 소개된 후에 1년 가까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초대받은 어느 전시회에서 나는 우연히 이 물건을 다시 만났다. 「진품명품」에 출연했던 그 출품자는 나에게 구매를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결국 안동의 어느 양반가에서 집안의 번영을 기원하는 소망을 담아서 정성스레 찍어냈던 약과판은 시간이 훌쩍 지난 후에 나에게 오게 되었다. 참으로 인연은 알 수 없는 일이다.”
양의숙 관장의 모습ⓒ예나르 제주공예박물관
“창조적인 문화는 이처럼 늘 변방에서 탄생하기 마련이다.”
작가 양의숙은 바람, 돌, 여자가 많다는 삼다도 제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유별나게 민예품에 관심이 많아서 ‘예쁜 것’이라면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렸다. 어머니는 그런 딸을 위해서 동네방네 다니며 손때 묻은 옛 물건들을 구해서 딸에게 ‘대령시켰다’. 미적 감성은 그렇게 키워졌다. 제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잘 나가는 여자아이들의 코스인 사범대학에 들어갔다. 하지만 만족할 수 없어서 대학원(홍익대학교)에 진학하여 미술공예를 전공했다. 예용해 선생은 그 열정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졸업 후에는 20여 년간 홍익대학교, 경희대학교, 건국대학교 등 여러 대학교들에서 두루두루 강의했지만, 외국 박사만 존중하던 시절이라 대학에는 더 이상 비전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술을 나르다”라는 뜻을 가진 화랑 “예나르”를 열고 현장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많은 예인(藝人)들과 좋은 물건들을 접하며 안목을 다졌다. 이 이력으로 〈TV쇼 진품명품〉 감정위원을 26년간 맡았다. 현재는 (사)고미술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 Gana Foundation for Art and Culture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