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TOUR · GALLERY
나는 누가 울면 따라 울어요
Group Exhibition
김다정·김혜원·방소윤·정주원
SPACE SO
VENUE
ARTIST
DATE
갤러리 스페이스 소는 2월 23일부터 3월 31일까지 약 한 달간 <나는 누가 울면 따라 울어요 the teardrop running down your cheek is mine>를 진행하며 작품 세계의 기반을 쌓아가고 있는 젊은 동시대 회화 작가 4인을 소개한다. 총 24점의 작품들은 관람자들에게 작가 김다정, 김혜원, 방소윤, 그리고 정주원의 각기 다른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전시는 회화의 장르 안에서 전개되는 ’모방된 세계‘가 관람자의 직관으로 전해지는 순간을 다룬다. 작가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자신의 세계를 회화의 표면에 옮겨내는데, 이때 화면 위에는 마치 진짜 같으면서도 진짜가 아닌 극한의 감각이 만들어진다. 스페이스 소는 전시 <나는 누가 울면 따라 울어요>를 통해 마치 정확한 사연을 듣기도 전에 타인의 눈물에 덩달아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처럼, 직관적으로 그림에 몰입하게 되는 경험의 장을 마련한다. 더불어 화면을 두고 이루어진 동시대 작가들의 회화적 실천이 성취로 이어지기까지의 실험과 수행에 대해서도 살펴보려 한다.
<나는 누가 울면 따라 울어요> (좌) 방소윤_Glitching Face, 2023, 캔버스에 아크릴, 40.5x35cm, (우) 김다정_ /net―O…R.fw, 2021, 캔버스에 유채, 163.7×116.8cm / 스페이스 소 | 사진 배한솔
김다정의 회화에서 우리는 공상과학적인 상상 속 모든 것들의 움직임을 본다.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딥웹 속 데이터 흐름, 뉴런을 오가는 전기 신호, 양자역학이 지배하는 미시세계, 혹은 어디가 얼굴인지 가늠하기 애매한 거대 외계인의 침공까지. 실로 목격한 적도, 달리 아는 바도 없지만, 전 세계가 밀레니엄 버그에 대한 공포에 휩싸인 이후 20여 년이 흐른 지금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게 된 장면들이다.
보이는 것과 달리, 김다정은 상상과 거리를 두는 편이다. 회화를 위한 ‘이미지 자동 생성’을 꿈꾸는 작가는 순수한 조형을 위해 수식을 전개하듯이 작업 과정을 엄격하게 설계한다. 그는 오랜 역사를 가진 구기 스포츠의 동세와 숱한 업데이트를 거쳐온 디지털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의 기본값들을 빌려온 후 이를 화면비, 작품 소재, 선의 움직임 등에 적용하여 작업을 알고리즘화한다. 그리고 경기장에 들어선 플레이어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경기를 보여주듯이 알고리즘의 빽빽한 규칙 사이를 유영하며 작업을 완성한다.
<나는 누가 울면 따라 울어요> 전시전경 / 스페이스 소 | 사진 배한솔
방소윤은 디지털 이미지를 이루는 무한의 입자를 손에 닿을 듯한 고해상도로 그려낸다. 디지털 필드에서 생성된 이미지 입자는 이미지의 탄생 출처를 밝힌다.
영어로 대화를 나누면서도 그에 묻어나는 모국어의 억양을 느끼고, 때로는 출신 도시까지도 알아낼 수 있는 것처럼 이미지를 구성하고 있는 최소단위가 어떤 질감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이미지가 어디에서 생산되었는지를 유추해볼 수 있다. 픽셀과 벡터 등으로 대표되는 2D 이미지, 복셀이나 폴리곤 등으로 모델링 된 후 렌더링을 거쳐 생성되는 3D 이미지들은 다양한 요소에 의한 질감 차를 표면에 그대로 투영한다.
(왼쪽부터) 방소윤_Peppermint and Red Glasses and Jiggle Jiggle, 2022, 캔버스에 아크릴, 131.5×130.5cm, 김다정_ /net―O…, 2019, 캔버스에 유채, 40.9×31.8cm, 방소윤_ Yes Eyes and Tooth but No Skin, 2023, 캔버스에 아크릴, 34.5×30.1cm / 스페이스 소 | 사진 배한솔
방소윤은 이 질감을 갑자기 현실 세계로 끌어오면서 혼란을 야기한다. 작가에게 축적된 경험들은 아바타의 모습으로 여러 차원의 필드를 관통하여 회화에 도달한다. 차원 간 이동으로 생성 당시의 정보 값을 부분적으로 잃어버린 채 화면에 흩뿌려진 이미지는 진실한 삶이 더 이상 물리적 현실에서만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김혜원 또한 작업을 위해 디지털 이미지 생산 기술의 힘을 빌린다. 그림의 도면이 되는 무미건조한 장면들은 핸드폰 카메라 기능에 의해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손쉽게 포착된다.
작가는 지극히 일상적인 소재와, 비율, 시점으로 이미지 자체에서는 철저히 모습을 숨기고, 대신 이미지 재현을 위해 취하는 표현 방식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자 한다. 재현 방식은 견고한 논리에 따라 구조를 갖춘다.
(왼쪽부터) 김혜원_올려다 본 가로수, 2019, 린넨천과 면천을 바느질한 십자수천 캔버스에 과슈와 수채, 50.3×40.9cm,
김혜원_내려다 본 가로수, 2019, 린넨천과 면천을 바느질한 십자수천 캔버스에 과슈와 수채, 50×60.6cm,
김혜원_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은 은행나무, 2020, 캔버스에 수채와 과슈, 아크릴릭 미디엄, 130.3×89.4cm / 스페이스 소 | 사진 배한솔
우선, 장면에서 ‘본 것’과 ‘보인 것’을 분리하고, 3차원의 무대를 구성하듯이 이것을 개별의 레이어로 철저하게 분리한다. 배경으로 흘러간 부분은 화면에 스며들도록 하고, 반대로 초점이 닿은 대상은 마지 부조 작업을 하듯이 물질을 두텁게 쌓아 올리거나 심지어는 다른 겹의 화면을 가져와 덧대는 방식으로 띄운다. 계속해서 최적의 방도를 찾아가면서 김혜원은 시지각적 경험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나간다.
(왼쪽부터) 정주원_답을 아는 나무, 2023, 캔버스에 아교템페라, 162.2×130.2cm, 정주원_미끄러짐을 연습하는 언덕, 2022, 캔버스에 아교템페라, 162.2×130.2cm,
김혜원_모기장 안에서, 2019, 캔버스에 수채화, 90.9×72.7cm / 스페이스 소 | 사진 배한솔
동양화에 기반한 재현 방식을 취하는 정주원의 풍경화에는 사유와 현실이 한데 뒤섞여있다. 그는 아무런 도구 없이 자연을 거닐고 온몸의 감각으로 세계를 기억한다. 기억에서 꺼낸 풍경 속에는 뚜렷이 보이는 대상도 사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풍경이 흐르는 시간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밤하늘의 별을 오랜 시간 비추어 찍어낸 사진처럼, 작가가 머물렀던 시간의 길이에 따라 수집된 반투명한 심상의 층위들은 서로를 포개며 겹겹으로 접합을 이룬다. 풍경 속 형체는 모호해지고, 장면을 이루는 조직들은 더 작은 조직들로 쪼개지며 흐르고 진동한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녹색 언덕>(2022) 중앙의 본 풍경을 주변으로 복제하고, 그림에 사용된 물질 중 하나인 흙에서 출발하여 <가짜캔버스>(2023)를 흙으로 빚어내거나 또는 아예 그림 속의 대상을 오브제의 형태로 꺼내오기도 하면서 정주원은 풍경의 경계를 흐트러뜨리는 일을 이어 나간다.
<나는 누가 울면 따라 울어요> 전시전경 / 스페이스 소 | 사진 배한솔
작가들이 그려낸 개별의 세계는 사각의 울타리를 곧 넘어설 듯 응집된 에너지를 머금고 일렁인다. 앞에 선 시선을 두고 잔뜩 팽창해있으면서도 끝내 말이 없이 고요함을 유지한다. 헤아림의 시간. 지켜보던 두 눈이 점과, 선과, 면과, 색을 바라보기를 멈추고, 이내 표면의 온 입자가 자신을 비추고 있음을 감지할 때 세계는 장막을 찢어내고 흘러내린다.
눈물이 되어 흐르는 세계를 초대에 당신은, 숨은 언어의 서술을 탐색해내려고 할 것인가 혹은, 못내 따라 울게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