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TOUR · GALLERY
Please Throw Me Back In The Ocean
Kara Joslyn
카라 조슬린
Perrotin Seoul
페로탕 서울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며 활동 중인 작가 카라 조슬린(Kara Joslyn)의 국내 첫 개인전 《Please Throw Me Back In The Ocean》을 개최한다.
Pull the hook out, please throw me back in
(고리를 빼고, 날 다시 던져 넣어줘)
Wherever is deepest, I can swim
(가장 깊은 곳이 어디든, 헤엄칠 수 있어 난)
…
– 라이언 카라베오(Ryan Caraveo) <Bubbles>(2018) 가사 중 –
Acrylic and polymer automotive paint on canvas 160 x 58.6 cm Photo: Marten Elder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고리(hook)는 낚시용품일 뿐만 아니라 부서지는 파도 위를 떠다니는 덫, 혹은 유혹이다…
요컨대 무언가가 우리의 무의식적 욕구를 자극하는데, 이는 대개 정해진 경계를 넘어서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샌디에이고에서 자란 카라 조슬린은 종종 자유롭게 바다를 유영한다. 물은 칼 융(Carl Jung)의 세계에서 무의식을 상징한다. 널리 알려진 대로 융은 집단 무의식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는데, 이는 인류 전체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기억, 충동, 그리고 욕구를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아메리카나(Americana, 미국적인 풍물)라는 개념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오늘날의 우려스러운 파괴 현상의 원인인 소비주의라는 문화적 개념과 그 외 여러 이념의 원천이 되는 자아(self)에 주목해야 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며 얻은 문화적 경험에 대한 자아 성찰과 아메리카나의 소비자본주의에 영향을 받은 집단 욕구와 기억에 대한 탐구가 결집된 다양한 크기의 회화 신작들로 구성된다. 지극히 정밀하고 놀라울 만큼 착시적인 작가의 회화는 회색조를 띠며 극명한 명암 대비를 보인다. 작품 속 조개껍데기, 나침도, 인형, 가면, 고리(hook) 등 기하학적이고 모서리진 종이 조각품들은 작가가 소장한 종이 공예 서적에 실린 사진 이미지들을 바탕으로 한다.
Kara Joslyn Installation views of Kara Joslyn’s ‘Please Throw Me Back In The Ocean’ at Perrotin Dosan Park, Seoul. Photo: Andy H. Jung.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보는 각도에 따라 푸른빛을 띠는 회화 작업으로 커다란 닻을 표현한 <And you say – Stay (I Missed Me)>(2023)처럼, 아주 그럴 듯하면서도 큰 규모의 작품을 위해 작가는 그만의 치밀한 작업 방법을 개발했다.
먼저 이미지를 스캔하고 컴퓨터에 업로드하여 편집한다. 디지털 편집을 마치고 확대한 스케치를 인쇄하여, 마스킹 테이프 작업을 한 캔버스에 이미지를 옮길 수 있도록 선을 베껴 그린다. 그 다음,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을 표시하고 테이프를 구역별로 조심스레 떼어낸 후, 검정색 아크릴 물감과 홀로그램 효과를 내는 분말형 안료를 혼합해 캔버스에 에어브러시로 얇게 도포한다. 작가가 혼합하여 사용하는 페인트는 단조로운 모노톤 회화에 사이키델릭한 분위기와 무지갯빛 효과를 더한다. 이차원적 평면에 입체감을 구현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작가는 안료의 밀도와 톤에 변화를 주며 다양한 회화적 실험을 시도한다.
흰 종이에 그림을 그릴 때처럼 백색 페인트를 일절 사용하지 않기에 표면에 하얗게 표현된 부분은 모두 캔버스 본연의 바탕이 남겨진 것이다. 비야 셀민스(Vija Celmins)가 “나는 종이가 보이는 것을 좋아한다. 종이도 작품에 일조하는 참가자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바 있듯, 작가의 작품에서는 캔버스가 참가자의 역할을 한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전체적인 선명도 확보를 위해 명암 대비를 높인 결과, 작품에 등장하는 사물 상당수는 얇고 힘없는 종이 재질에서 단단하고 무게감 있는 소재의 물체로 탈바꿈한 듯하다. 한 번 손을 대면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과정을 통해 작품이 탄생하기에 세심하고 꼼꼼한 준비 과정은 작가에게 매우 중요하며, 그렇기에 후회의 여지는 있을 수 없다.
Kara Joslyn NOPE (After Magritte and Peele), 2023 Acrylic and polymer automotive paint of canvas 183 x 152.6 cm Photo: Marten Elder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작품의 구도는 대부분 직관적으로, 허공에 떠 있는 조개껍데기 그림인 <my whole world’s turned amphetamine blue, now I’m livin’ without you>(2023)에서 보이듯 대부분 단일 사물의 전면부를 근접 묘사한 형태를 띤다. 하지만 일렁이는 물결 위로 어렴풋이 떠오른 꽃을 표현한 <NOPE (After Magritte and Peele)>(2023)의 경우,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의 <이미지의 배반(The Treachery of Images)>과 그 구성이 일맥상통한다.
비야 셀민스와 마찬가지로 카라 조슬린 역시 책에 실린 사진에 주목한다. 접혀지고 오려지는 흰 종이와 이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에서 회화적 가능성을 발견하는 작가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흑백 사진과 묘한 유사성을 표현하기 위해 그만의 치밀한 렌더링 기술로 이미지를 구현한다.
물론, 이러한 기법이 석판 인쇄로 인화된 상업 사진의 매끄러움을 흉내 내며 노골적으로 포토리얼리즘(Photorealism)을 표방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작가의 작업은 사진 정보에 수동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 작품 앞에 선 관객은 물리적 존재감이 뚜렷한 과정 중심적 회화를 즉시 사용 가능한 제품을 기계적으로 인쇄한 사진으로 착각할 일은 결코 없다.
사진적 현실성과 회화적 비현실성을 성공적으로 결합시킴으로써 작가는 기록, 선택, 재촬영, 편집, 확대, 그리고 그리기라는 강도 높은 과정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킨다. 우리로 하여금 회화가 육체 노동적이고 힘든 활동이라는 걸 발견하길 희망한다. 여기저기 비뚤어진 줄이나 희미하게 남은 마스킹 테이프 자국처럼 회화의 불완전한 부분 마저도 보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배경도, 장소에 대한 암시도 없고, 흑색과 백색, 간혹 보이는 푸른색을 제외하고는 색조차 거의 없는, 분리된 채 놓인 최소한의 미국적인 형태와 사물들 외에는 그 무엇도 없는 작품을 통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작가가 표현하는 시각적 환영의 세계와 실제 물리적 현실 간의 상호작용 및 충돌은 그의 작품을 재현된 이미지와 집단 무의식의 파편 사이에 위치시키며, 이를 통해 종이 공예처럼 순수해 보이는 풍토 문화가 역설적이게도 미국 소비주의에 깊이 뿌리내린 아메리카나(Americana)의 이념적, 역사적 구성의 엄청난 모순을 드러낸다.
Acrylic and polymer automotive paint on canvas 81.4 x 117 cm Photo: Marten Elder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카라 조슬린 작업의 본질을 보면 미묘한 디테일과 뛰어난 매체 제어 능력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자기표현과 사회 비판을 위해 키치하고 진부한 지역 특유의 문화를 드러내는 사진 이미지가 건네는 중립성과 거리를 두고자 하는 바람도 있다.
일례로 <Love, peace and harmony? Oh very nice, very nice. But maybe in the next world. (The Decollation of Alan Watts / Grooving on the Eternal Now as Sacrament)>(2023)라는 농담조의 제목을 가진 작품을 들 수 있는데, 이 작품에는 작가가 앨런 왓츠(Alan Watts, 비공식적이나마 히피들의 정신적 지도자이며 비트 세대 시인들의 절친한 친구)라고 밝히는 턱수염 난 남성의 두상 조각과 그 머리 방향으로 꽃을 쥔 채 뉘어 있는 손 하나, 그리고 세워 놓인 또 다른 손 하나가 그려져 있다. 죽음, 그리고 세속적 물질과 쾌락의 무익함을 나타내는 정물화의 한 장르인 바니타스(vanitas)의 주제를 상기시키는 작품 구도는 시각적, 감정적 불안감을 드러내며 오늘날 삶 속의 냉소주의를 반영한다.
아울러 다수의 작품 제목에서도 관련 단서를 찾을 수 있는데, 작가는 본인이 강조하고자 하는 내러티브를 암시하고 형태와 이미지를 소리와 가사를 통해 공감각적으로 연상할 수 있도록 자극하고자 다양한 곡에서 발췌한 가사를 제목에 활용했다.
그렇다면 표현주의의 언어에 도전하고 아메리칸 드림의 어두운 이면을 주저 없이 드러내기 위해 재현된 사진에 대한 작가 자신의 생각을 캔버스에 어떠한 방식으로 신중히 표현하였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작가는 재현된 사진을 미술사학자 린다 체이스(Linda Chase)가 사실적이면서도 비유적으로 지칭한 “고유한 현상학적 존재감을 가진 사물”이라 생각한다.
사실주의(Realism)의 역사, 사실주의와 정치적 역할의 관계, 그리고 사회비판적 요소가 부재했던 포토리얼리즘(Photorealism)이라는 짧은 미술 사조를 고려해볼 때, 우리는 케힌데 와일리(Kehinde Wiley), 세이어 고메즈(Sayre Gomez), 그리고 이제 카라 조슬린(Kara Joslyn) 등의 작가를 필두로 하여 현재 다시금 나타나고 있는 극사실주의(Hyperrealism)의 미래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Portrait of Kara Joslyn Photo by: Guillaume Ziccarelli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작가소개
1983 년 미국 샌디에고 출생 미국 로스엔젤레스 거주 및 작업 카라 조슬린(Kara Joslyn)은 스토리텔링과 환영을 주제로 입체적 회화를 그린다. 작품 속 달빛이 깃든 공간은 환상 및 현실과 결합하며 불안정하면서도 매력적인 작가만의 알레고리를 형성한다.
1950년대 공예 교본과 신화를 작업의 소재로 삼으며 가내 장식적 요소들을 시간을 초월한 독특한 형상으로 재배치해 보는 이들의 시각을 교란시킨다. 분말형 차량용 페인트 안료를 혼합하여 표현해 내는 홀로그램 효과는 작가의 환영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다. 또한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의 빛에 영감을 받은 작가는 과거 컴퓨터가 발명되기 이전 그래픽 디자인에 사용되었던 에어브러시를 작업에 활용하여 디지털 이미지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모든 것들이 합해져 작가의 작업은 역사적 상징성과 미래의 저변, 그리고 우리의 무의식을 엮어 시간을 넘나드는 여행을 선사한다. 작가는 “만약 사진이 거짓의 지표, 즉 거짓을 말하는 진실이라면, 나는 회화를 눈속임, 즉 진실을 말하는 거짓이라 생각하고 싶다” 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