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TOUR · GALLERY
장미 한 송이 (Une Rose)
Yee sookyung
이수경
Gana Art
가나아트는 도자기 파편을 금박으로 재조합하는 독창적인 방식의 <번역된 도자기> 연작을 통해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리고,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의 반열에 오른 이수경(Yeesookyung, b.1963-)의 개인전, 《장미 한 송이(Une Rose)》를 개최한다.
이수경은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드로잉, 퍼포먼스 등의 다양한 매체로써 광범위한 예술적 스펙트럼을 선보였으며, 다종교, 다문화 등에서 차용한 이질적인 요소를 하나의 작품 안에 혼종시키는 실험적 방식의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를 인정받아 그는 2017년 제57회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초청작가로서 참여했으며, 이탈리아의 카포디몬테 미술관, 미국의 아시아 소사이어티 텍사스 센터, 한국의 아틀리에 에르메스, 대만 타이베이 현대미술관, 독일의 오라니엔바움 미술관 등 세계적인 명성의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또한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영국 박물관, 홍콩 M+미술관, 스페인 이페마 아르코 컬렉션, 국립현대미술관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이번 개인전은 그의 다채로운 작업세계 중에서도 작가가 근래 들어 천착하고 있는 장미 모티프의 신작 회화, <오, 장미여!> 연작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이수경, Oh, Rose! 22-3-3, 2022, Acrylic on canvas, 27.3 x 22 cm, ⓒ 이수경 (이미지 제공: 가나아트)
이수경은 역사, 문화적 맥락을 함축한 회화, 조각, 오브제, 퍼포먼스 등 매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동시에 주제와 표현에 있어서도 변주를 꾀하며 변화무궁한 모습을 보이는 작가이다. 그렇기에 그는 회화 작업에 있어서도 다수의 연작을 통해 다채로운 주제와 도상을 선보여왔다. 2005년 미술 치료에서 시작된 <매일 드로잉> 연작, 경면주사로 규칙적인 패턴을 그리며 안위를 염원하는 <불꽃>과 <불씨> 연작 등의 회화는 반복적인 창작 행위로써 심리적 회복을 꾀하는 일종의 치유적 행위의 결과물이었다. 그가 2014년 1월부터 매달 최면 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전생으로의 회귀를 경험하고 이를 시각 언어로써 기록한 <전생 역행 그림> 역시 최면이라는 치유적 방식을 통하였다는 점에서 여타의 연작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흑인 전사, 사슴, 주술사, 소녀, 심지어는 해일을 일으키는 바다의 에너지이기도 했다는 그의 전생 체험에 대한 서사는 작가의 내면에 내재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야깃거리를 짐작케 함과 동시에 탁월한 이야기꾼으로서의 작가의 자질을 방증한다. 그는 전생 체험에 등장하는 다양한 주체들의 이야기를 화면 위에 자유자재로 펼쳐 보인다. 이로써 관객을 초월적 공간으로 이끄는 것인데, 그 매개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배경에 그려진 장미 도상이다. <전생 역행 그림>의 배경에는 이생과 전생, 의식과 무의식을 가르는 경계를 건널 때마다 작가가 거쳐갔던 장미 정원이 그려진다.
이수경, Oh, Rose! 22-0-30, 2022, Acrylic on canvas, 18 x 14 cm, ⓒ 이수경 (이미지 제공: 가나아트)
본 전시의 출품작인 <오, 장미여!> 연작은 배경에 지나지 않았던 장미 그 자체에 집중함으로써 <전생 역행 그림>과 제재에 있어서의 연속성을 이어간다. 무의식 속 과거의 다양한 ‘나’를 만나기 위한 통과의례이자 그 경계를 표상하는 장미가 독립된 주제로서 다루어진 것이다. 이처럼 2022년도부터 새롭게 시작한 <오, 장미여!> 연작에서 장미는 시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설화(說話)가 가능한 무의식의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모티프이다.
“장미꽃 송이들은 나의 무의식에 수놓인 영혼이다.”
– 이수경 –
그가 그려내는 장미에는 전생 체험 속 다양한 주체들의 각기 다른 내러티브가 담겨 있어, 마치 탐스러운 장미 송이가 활짝 개화하는 순간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들려올 것 같은 예감을 선사한다. 이렇듯 오로라를 연상케 하는 신비로운 추상 화면을 바탕으로 피어난 장미는 전생과 이생, 의식과 무의식, 추상과 구상의 경계에 놓여있다.
더 나아가 이수경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아름답고 요염한 여인에 비견되거나 사계절 내내 피는 꽃이라는 이유로 ‘사계장춘(四季長春)’의 길상적 의미 를 지녀온 장미의 의미가 해당 연작에 더욱 풍부한 서사를 더할 것이라 말한다. 사계장춘은 “일년 내내 봄과 같이 따뜻하고 편하게 지내라”란 일종의 축복의 의미인데, 이로부터 해당 연작에는 이전의 회화 또는 ‘금’이 가 쓸모없어져 버린 도자기를 ‘금(金)’으로 이어 붙여 예술적으로 재번역한다는 데서 ‘재생’과 ‘치유’의 의미를 찾았던 <번역된 도자기>에서와 같이 심리적 회복과 발원의 의미가 담겨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수경, Oh, Rose! 22-4-11, 2022, Acrylic on canvas, 33.4 x 24.2 cm, ⓒ 이수경 (이미지 제공: 가나아트)
본 전시의 제목인 《장미 한 송이》는 <오, 장미여!> 연작을 지칭하는 것인 동시에, 그가 해당 연작을 그릴 때면 캔버스에 뿌린다고 하는 프레드릭 말(Frederic Malle)의 동명의 향수를 언급하는 중의적 표현이다. 장미의 뿌리에서부터 잎사귀까지 장미 한 송이의 향을 그대로 담았다는 이 향수가 불러일으킨 후각적 심상이 그의 화면 속에 시각적으로 도해되어 남아 있는 것이다. 이로써 형성된 공감각적 심상은 물론 무의식의 저편에 피어있는 장미 꽃밭으로 관람객을 이끄는 이수경의 <오, 장미여!> 연작의 주제는 이번 전시에 출품된 신작 조각 <달빛 왕관_오, 장미여!>로 다시금 확장된다.
23.04.20 – 05.21, 이수경 개인전 《장미 한 송이 (Une Rose)》, 가나아트 나인원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가나아트)
왕관을 모티브로 한 <달빛 왕관> 연작은 신라의 금관과 백제의 금동대향로의 형태에서 영감을 받아 2017년부터 시작되었으며, 왕관을 인간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신체 부위인 머리 위가 아닌 받침대와 같이 바닥에 놓음으로써 그것이 상징하는 권력의 전복을 상징한다. 본 전시에 출품된 조각에는 사자, 동물의 발, 앳된 얼굴의 여성, 장미꽃 등의 상징적인 형상이 마치 불에 녹아내린 것과 같이 뭉쳐져 하나의 생명체와도 같은 인상을 주는데, 그 가운데에 손이 나와 모든 절망의 순간을 딛고 피어난 금빛 장미를 건넨다. “나에게 장미는 ‘빛’이자 ‘생명’을 의미해요. 오로라 빛 속에 피어나는 작은 생명들이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그대로 전달되었으면 좋겠어요”라는 작가의 말처럼 본 전시가 장미의 생명력으로 그득찬 치유의 장이 되길 바란다.
23.04.20 – 05.21, 이수경 개인전 《장미 한 송이 (Une Rose)》, 가나아트 나인원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가나아트)
Oh, Rose! 22-3-38, 2022, Acrylic on canvas, 27.3 x 22 cm
Oh, Rose! 22-3-47, 2022, Acrylic on canvas, 27.3 x 22 cm
ⓒ Gana Art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