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COLUMN · REVIEW
우리는 Taste Maker가 될 것인가,
Taste Taker가 될 것인가.
Uli Sigg Collection
울리 지그 컬렉션
우리에게 전시 관람의 문턱이 낮아지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아마도 삼성 故 이건희 회장의 컬렉션 공개로부터가 아닐까 한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 미술관과 갤러리의 진입장벽은 꽤 높았다. 미술은 특정 계층의 사치스러운 취미활동으로 치부했기에 일반인들에게 미술은 생소하고 낯선, 그리고 어려운 문화로 여겨졌다. 하지만 삼성가(家)의 컬렉션이 사회에 환원되면서 일반인들에게는 익숙치 않은 작가의 이름보다 이건희 회장의 소장품이라는 호기심에 많은 사람들이 미술관으로 모여들었다.
MMCA Lee Kun-hee Collection: Masterpieces of Korean Art|Curator-guided exhibition tour, Youtube : 국립현대미술관
그것이 유명세에 편승한 대중의 단순한 궁금증일지언정 그 덕분에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건희 컬렉션에 반응했다. 그 결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이건희 컬렉션에 총 25만 명이 다녀가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 서울을 비롯한 지방의 여러 미술관에서 이건희 컬렉션 순회전이 열렸고,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호응은 실로 뜨거워 전시 관람 티켓을 예약하는 일이 피케팅이 되는 생경한 모습들이 미술계 안에서 벌어졌다.
[서울 뉴스핌] 이영란 기자= 윤형근의 추상작품과 마주한 RM. 베니스에서 열리는 윤형근 전시회를 보기 위해 RM은 지난 2019년 숨가뿐 일정을 쪼개 이탈리아 베니스의 포르투니미술관을 찾았다. 또 텍사스의 외진 도시 마파의 치나티재단을 방문해 도널드 저드의 조각들과 함께 전시된 윤형근의 회화를 감상하기도 했다. [사진=RM인스타그램] 2022.07.29 art29@newspim.com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 전시를 관람하는 일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취미생활로 자리 잡게 되었다. 가수 RM이 방문하는 미술관을 따라 찾는 일, 아트페어에 그림 쇼핑을 하러 가는 일, 갤러리 전시에 오픈런이 생기는 일 등 다양한 모습과 형태로 사람들은 예술을 즐기고 있다.
이렇게 미술계는 급속도로 팽창하고 있지만, 사실 국내에는 명망 있는 컬렉터의 존재가 흔치 않다. 우리 사회에 그림을 소장한다는 것은 여러 소문을 양산할 수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에 사람들은 본인의 컬렉션을 사회에 공개하지 않는 편이다. 또한 단순한 투자 목적이 아닌 사회적, 역사적 가치를 염두에 둔 장기적 관점에서의 컬렉션은 더더욱 보기 어렵다.
이는 예술에 대한 안목과 예술품의 가치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과도 관련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을 그저 사치품 정도로 혹은 고급문화 정도로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에서는 당연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Installation View of <SIGG: CHINESE CONTEMPORARY ART FROM THE SIGG COLLECTION>, He xiangyu_The death of marat_fiberglass silica gel_36x183x85cm_2011, Courtesy of the Songeun and artist, Photo : 김새슬
하지만 한국 미술시장의 규모가 1조 원을 돌파했고, 서구 미술계도 한국 미술시장과 작가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현시점에서 우리도 미술품 컬렉션에 대한 미래적 가치를 논하고, 컬렉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이런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이 시점, 송은문화재단에서 의미 있는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바로 세계적인 컬렉터 울리 지그(Uli Sigg)의 컬렉션을 국내 최초로 공개하게 된 것이다.
Installation view of Songeun Art Space(B2) Courtesy of the Songeun and artist, Video Footage : ARTiPIO
컬렉터 울리 지그는 스위스 취리히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경제부 기자로 경력을 시작해 사업가 이자 스위스의 외교관(중국, 몽골, 북한)으로 활동했다. 그는 아이웨이웨이, 쩡판즈, 쟝사오강, 위에민준 등 중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발굴하고 그들의 작품을 대거 소장했다.
제 3국의 아시아 국가, 중국 미술을 서구 자본과 서구권 미술계에 각인시킨 것은 울리 지그의 역할이 상당했다고 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울리 지그는 ‘현재의 중국 현대미술을 존재하게 한 사람’, ‘중국 현대미술을 세계에 소개한 컬렉터’로 유명해졌다.
Zeng Fanzhi, Untitled (Portrait of Uli Sigg), Photocopy on synthetic canvas, 92x75x2cm, Courtesy of the Songeun and artist, Photo : 김새슬
Zhao Bandi, Portrait Uli Sigg, 2010, Oil on canvas, 166.5×116.5x4cm, Courtesy of the Songeun and artist, Photo : 김새슬
울리 지그는 중국에서 지내면서 중국의 복잡다단한 사회를 직접 경험하며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어가 표현하지 못하는 시각예술이 훨씬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는 현대미술을 통해 중국 사회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호기심으로 컬렉션을 시작했고, 2,000명에 달하는 작가의 작업실을 직접 방문하면서 작품을 구매했다. 컬렉션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작품을 통해 중국 사회를 알아갔다. 그래서 그의 컬렉션에는 한 나라의 히스토리와 타임라인을 담고 있는 백과사전식 컬렉션이라는 특징을 볼 수 있다.
Installation view of Songeun Art Space(1F) Courtesy of the Songeun and artist, Photo : Songeun
Yan Lei Ecstasy steel acrlic t=10, Φ198cm 2019, Courtesy of the Songeun and artist, Photo : ARTiPIO
Yan Lei Ecstasy steel acrlic t=10, Φ198cm 2019, Courtesy of the Songeun and artist, Video Footage : ARTiPIO
Installation View of <SIGG: CHINESE CONTEMPORARY ART FROM THE SIGG COLLECTION>, Xie Molin, Courtesy of the Songeun and artist, Photo : ARTiPIO
개인의 컬렉션으로부터 시작된 예술적 안목이 한 시대의 지표를 만들었고 한 국가의 미술사에 큰 획을 그었다. 이를 통해 변방의 나라에서 세계 중심의 미술시장을 일구었고, 보다 가치 있는 하나의 자산과 유산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울리 지그의 컬렉션을 통해서 예술에 대한 열정과 철학 그리고 신념을 엿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전시는 2023년 5월 20일(토)까지 송은문화재단에서 진행된다.
Installation View of <SIGG: CHINESE CONTEMPORARY ART FROM THE SIGG COLLECTION>, Courtesy of the Songeun and artist, Photo : ARTiPIO
전시 안내
전시 제목 : 《SIGG : Chinese Contemporary Art from the Sigg Collection》
전시 장소 : 송은문화재단
전시 기간 : 2023년 3월 10일(금) – 5월 20일(토)
관람 안내 : 월요일-토요일 / 11:00 – 18:30
필자 김새슬은 중국 상하이 교통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상하이 대학 미술학부에서 예술학 이론 석사과정을 졸업하였다. 상하이 파워 롱뮤지엄과 조선일보미술관에서 근무하였으며, 미술경제와 미술산업에 대해 고민하며 글을 쓴다. 현재 롯데백화점 아트컨텐츠실에서 근무하며 아트페어와 전시기획을 담당하고 있다.
ⓒARTiPIO Editor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