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COLUMN · REVIEW
예술은 모두를 위한 것
Art Is For Everybody
Keith Haring
키스 해링
VENUE
ARTIST
Keith Haring 키스 해링
DATE
AUG 21, 2023
CONTRIBUTOR
Lee Jiyoung 이지영
2023년 뜨거운 여름, 미국 LA 다운타운에 위치한 더 브로드 미술관(The Broad Museum)에서는 1980년대 뉴욕 낙서 미술의 전설이 된 키스 해링(Keith Haring, b.1958-1990)의 전시가 한창입니다. 키스 해링은 살아생전 대중과 미술계, 미술시장의 관심을 동시에 받은 행운의 작가인데요.
이번 키스 해링 개인전은 더 브로드 미술관의 설립자인 고 엘리 브로드(Eli Broad)와 그의 아내가 수집한 키스 해링의 작품들을 포함하여 미술 기관과 개인 소장자들에게서 대여한 그림, 드로잉, 조각, 비디오, 그래픽 작품 약 120여 점이 작가의 아카이빙 자료(해링이 지하철과 공공장소에 그린 벽화에 대한 문서와 사진들, 활동 기간에 발행한 포스터와 티셔츠 그리고 작가가 직접 손으로 쓴 일기 등)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답니다.
더 브로드 미술관, 키스 해링(Keith Haring) 개인전 포스터, 23.05.27-10.08, 2023, ⓒThe Broad Art Museum, 이미지 제공: 플랫폼에이
이번 전시회의 제목이 된 <Art Is For Everybody>은 해링이 20살 때 그의 일기에 쓴 것을 인용한 제목인데요. 소수를 위한 부르주아 예술을 하지 않고, 예술을 필요로 하는 대중을 위해 예술을 하는 것이 예술가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던 해링의 예술 철학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등 키스 해링의 상징들로 알려진 아이콘들이 가득 찬 전시 공간에 들어선 관람객들은 마치 1980년대 키스 해링 작업의 무대가 된 뉴욕으로 순간 이동을 한 듯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번 전시는 1980년대 키스 해링의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더 브로드 미술관, 키스 해링(Keith Haring) 개인전, 23.05.27-10.08, 전시 전경, 2023, 이미지 제공: 플랫폼에이
해링이 지냈던 1980년대의 뉴욕은 고급문화와 하위문화 그리고 대안문화와 같은 여러 형태의 문화와 그것들이 표방하는 목소리가 엉키고 어우러져 있었죠.
해링은 이러한 문화적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서 진지하게 미술사, 기호학을 공부하고 그래피티와 힙합, 브레이크 댄스 등 하위문화가 공존하며 살아 숨 쉬는 언더그라운드 문화 안에서 또래 젊은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합니다.
1980년부터 1981년 사이 해링은 지하철 검은색 광고 백보드에 흰 분필로 그래피티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지하철은 그에게 실험실이자 작업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었으며, 각계각층의 행인들이 볼 수 있는 스팟이었죠. 이때 해링이 반복적으로 그려낸 빛을 내는 아기, 짓는 개, 비행접시, 큰 하트 같은 아이콘그래피(Iconography)가 대중에게 빠르게 퍼지며 그에 대한 인지도를 높였습니다. 제도권에서도 그에게 러브콜이 쏟아졌죠.
더 브로드 미술관, 키스 해링(Keith Haring) 개인전, 23.05.27-10.08, 전시 전경, 2023, 이미지 제공: 플랫폼에이
밝음과 어둠, 가벼움과 무거움의 강약이 놀라운 조화를 이루는 키스 해링의 작업은 단순한 기호적인 표현 이면에 진지한 주제와 의미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특히 작업에 주로 등장하는 아기 형상은 순수함과 젊음, 에너지와 능력, 자유 등을 의미합니다.
이외에도 황금만능주의와 기계문명의 비인간성에 대해 풍자하기 위해 자본주의 산물인 달러 기호($)와 TV, 컴퓨터, 로봇 이미지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는 고도의 기술력과 미래를 상징하는 비행접시가 고대 문명을 상징하는 피라미드를 공격하는 형상을 통해 진화하는 기계문명과 발전하는 과학기술이 결국 인류를 파괴시킨다는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했죠.
뿐만 아니라 이목구비가 없는 사람들이 어깨동무하는 모습, 손과 손을 맞잡은 모습들을 하트 이미지와 함께 묘사한 작업에는 남녀노소, 인종과 인종, 나라와 나라 간 어떤 차이나 차별 없이 모두가 하나로 연합되고 사랑하기를 꿈꾸는 작가의 소망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더 브로드 미술관, 키스 해링(Keith Haring) 개인전, 23.05.27-10.08, 전시 전경, 2023, 이미지 제공: 플랫폼에이
사실 해링은 작품에 성적 이미지들을 많이 다루기도 했는데요. 예를 들어 성기를 드러낸 인간, 인간과 인간의 성교, 인간과 동물의 성교 장면 등은 각각의 작품에 주제를 불문하고 드러나는 이미지들입니다. 해링의 성적 이미지가 담긴 이러한 작품들은 단지 인간의 성적 욕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성적 쾌락을 좇는 인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것입니다.
이렇듯 작품에 나타나는 성적 모티브는 해링이 1988년 에이즈를 진단받고, 1990년 2월 에이즈 합병증으로 사망한 작가의 동성애적 삶, 에이즈 환자의 삶과 연결됩니다. 그는 삶의 마지막 해 동안 작업을 통해 자신이 직접 겪고 있는 병에 대해 말하고, 에이즈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는 데 열정을 쏟았습니다.
이로써 키스 해링이 추구하는 모두를 위한 예술이란 단순히 미술관과 같은 전시공간 밖으로 나와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관람할 수 있기만을 바란 것이 아니고, 대중에게 메세지를 전달하고 대중과 소통하기 위한 실천적 행동주의 방법이었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해링의 작업은 최근 미술계에 LGBT(성소수자) 이슈가 큰 화두가 되면서, 그의 실천적 활동들이 다시금 큰 주목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1986년 키스 해링(Keith Haring)의 작업하는 모습, Keith Haring at work in the Stedelijk Museum in Amsterdam in 1986. Courtesy Nationaal Archief
키스 해링은 일반적인 낙서화가들과 달리 정식 미술교육을 받은 낙서화가입니다.
그는 장 뒤뷔페(Jean Dubuffet), 피에르 알레친스키(Pierre Alechinsky), 크리스토 자바체프(Christo Javacheff)의 조형언어와 예술적 신념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 등 작가 및 미술사의 여러 모습을 배우고 흡수하며 그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립하게 됩니다.
작업실에서 피에르 알레친스키(Pierre Alechinsky)의 모습, PIERRE ALECHINSKY’S WORKSHOP IN PROVENCE, FRANCE. ©PIERRE ALECHINSKY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PHOTO BY CATHERINE PANCHOUT / SYGMA / GETTY IMAGES
해링은 피에르 알레친스키로부터 자연발생적인 작은 모양들과 카툰에서 빌려 온 듯한 프레임, 자유로운 표현 기법과 우연성, 직관성, 자발성 등의 공통점을 찾으며, 이를 통해 자기의 예술세계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알레친스키의 거대한 작품과 대규모의 작업 방식은 해링을 자극해 점점 더 큰 작품을 작업할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주기도 했답니다.
해링의 예술세계에 영향을 준 또 다른 중요한 계기는 포장 예술가인 크리스토와의 만남이었습니다. ‘게이츠 프로젝트(Gates Projects)’로 유명한 크리스토의 작품세계는 해링이 가지고 있던 ‘공공미술’이라는 또 다른 방면의 예술 개념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크리스토의 <게이츠 프로젝트(독일 베를린)> 전경, Christo and Jeanne-Claude Wrapped Reichstag, Berlin, 1971-95 — Photo: Wolfgang Volz © 1995 Christo and Jeanne-Claude Foundation
크리스토 자바체프와의 만남을 통해 해링은 예술가의 내면이 담긴 작품은 세상을 투영하는 하나의 매체로서 사람들의 삶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동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죠. 이로 인해 예술의 공공적 가능성을 믿고 미술을 통한 사회 참여에 대해 고민하게 되기도 했답니다.
더불어 앤디 워홀(Andy Warhol)은 키스 해링에게 멘토 같은 존재였습니다. 해링은 앤디 워홀이 최초의 진정한 대중예술가라고 생각했으며, 앤디 워홀을 위해 ‘앤디 마우스’를 창안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월트 디즈니의 미키마우스와 앤디 워홀의 작품을 결합해 그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앤디 워홀에게 영감받은 키스 해링의 앤디 마우스(Andy Mouse) ©Keith Haring Foundation
1982년 해링은 조셉 보이스(Joseph Beuys),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게르하드 리히터(Gerhard Richter), 사이 트웜블리(Cy Twombly), 장-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및 앤디 워홀과 함께 카셀에서 열린 도큐멘타 7에 초대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1982년부터 1989년 사이 100건 이상의 갤러리 개인전과 다양한 단체전에 초대되었으며, 자선단체, 병원, 탁아소, 고아원 등에서 50개 이상의 공공 예술 벽화를 의뢰받아 제작하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그가 떠난 지금까지도 전 세계 약 150개 이상의 주요 전시회에 소개되어 오며 여전한 인기를 실감해 볼 수 있습니다. 해링의 작품은 뉴욕의 현대미술관, 모건 도서관 및 박물관, 휘트니 미술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시카고 미술관, 카네기 미술관과 앤디 워홀 미술관, 쾰른의 루트비히 미술관 등 주요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굿즈 앞에 선 키스 해링의 모습 ©Keith Haring Foundation Photo by Tseng Kwong Chi c. Muna Tseng Dance Projects, Inc., New York
해링은 제도권 미술시장에 데뷔한 이후에도 한동안 지하철에서 그림을 계속 그렸고, 작품을 무료로 나누는 것을 즐겼으나, 자신의 지하철에 그린 작업들이 빈번히 도난당하자, 그는 지하철에 그림 그리는 것을 멈추고 1986년 4월 누구나 합리적인 가격에 자신의 작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소호에 티셔츠, 장난감, 포스터 등 그의 작품을 판매하는 굿즈샵을 열었습니다.
해링은 지하철역에서 그리던 그래피티 작업의 연장선상으로 굿즈샵을 운영하면서, 고가 미술품과 저가 미술품 사이 고급 미술과 하위 미술 사이에 장벽을 허물기도 했는데요. 이 굿즈샵은 해링이 죽은 후에도 2005년까지 영업이 계속되었는데 굿즈샵으로 얻은 수익은 1989년에 설립한 키스 해링 재단을 통해 에이즈 단체와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에 지원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그는 미술시장에서도 일찍부터 주목을 받았지만, 자신의 작품이 너무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작품가를 가능한 낮게 유지하길 원하는 작가의 의지를 반영해 1984년도까지만 해도 그의 작품은 3,000달러에서 2만 달러 사이에서 거래되었죠. 하지만 그가 떠난 지금, 키스 해링의 작품 가치는 날로 상승하고 있습니다.
2017년 5월, 소더비 뉴욕에서 가장 비싼 낙찰가인 6,537,500달러 낙찰되었으나, 대금 미지급으로 낙찰 취소. Keith Haring, UNTITLED, acrylic on vinyl tarpaulin with metal grommets, 308.6 x 301.6 cm, 1982
2021년 6월, 크리스티 런던에서 5,938,492달러 낙찰. Keith Haring, UNTITLED, acrylic on canvas, 152.4 x 152.4 cm, 1984
현재 키스 해링의 작품 중 최고가로 거래된 작품은 2021년 6월 크리스티 경매에서 거래된 약 594만 달러에 거래된 1984년작 ‘무제(Untitled)’인데요.
사실 이보다 앞서 2017년 5월, 그의 대표적인 상징이 잘 담긴 작품인 1982년작 ‘무제(Untitled)’가 뉴욕 소더비(Sotheby’s)에서 약 650만 달러에 낙찰됐지만 낙찰자가 대금을 지불하지 않아, 소더비는 2017년 8월 이 작품을 440만 달러에 되팔며 일단락됩니다. 이로 인해 실질적으로 경매에서 가장 비싸게 거래된 해링의 작품은 2021년 6월 낙찰된 1984년작 ‘무제(Untitled)’라 할 수 있죠.
해링이 바라던 대로 합리적인 가격에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그가 떠난 지금도 여전히 미술시장에서 남녀노소 불문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을 봤을 때, 그가 바라던 대로 키스 해링의 예술은 모두를 위한 것으로서 자리 잡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시 안내
전시 제목 : 《ART IS FOR EVERYBODY》
전시 장소 : 221 S. Grand Avenue Los Angeles, CA 90012 The Broad Art Museum
전시 기간 : 2023년 5월 27일(토) – 10월 8일(금)
관람 안내 : (화/수/금) 11:00 – 17:00, (목) 11:00-20:00. (토/일) 10:00 – 18:00
*매주 (월),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휴관
필자 이지영은 지난 20년 간 가나아트갤러리의 큐레이터를 포함해 미술시장 현장에서 다수의 국내외 전시를 기획하고 컬렉터를 위한 아트 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현재 아트컨설팅 및 큐레이팅 에이전시 플랫폼에이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미술시장과 현대미술, 예술과 노동, 아트 비즈니스등과 관련한 학술 발표 및 강의, 저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는 <아트마켓바이블>(미진사), <작은 돈으로 시작하는 그림 재테크>(위즈덤하우스), <아트테크바이블>(다산북스)가 있다.
ⓒARTiPIO Editor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