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TOUR · MUSEUM
바위가 되는 법
Kim Beom
김범
LEEUM MUSEUM
삼성문화재단(이사장 김황식)이 운영하는 리움미술관이 한국 동시대미술 작가 김범(b.1963)의 개인전 《바위가 되는 법》을 7월 27일(목) 부터 12월 3일(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김범의 지난 30여 년간 전개된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대규모 서베이 전시로, 리움미술관의 그라운드갤러리와 블랙박스에서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 총 7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김범의 단독 전시로는 최대 규모이자 국내에서 13년만에 열리는 개인전으로 1990년대 초기작부터 대표 연작 ‘교육된 사물들’, ‘친숙한 고통’, ‘청사진과 조감도’ 및 최근 디자인 프로젝트 등 그동안 국내에서 만나 볼 기회가 없었던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아 한국 동시대미술에 큰 영향을 준 김범의 정수를 보여준다.
리움미술관, <바위가 되는 법> 2023. 전시 전경. 제공 리움미술관. ⓒ김범. 촬영: 이의록, 최요한.
작가는 회화, 드로잉, 조각, 설치, 영상, 책 등 다양한 매체를 가로질러 ‘보이는 것’과 ‘실체’ 간의 간극을 절묘하게 드러낸다. 인지적 간격에 대한 탐구는 초기작에서 주로 미술의 전통 매체인 회화를 중심으로 펼쳐지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다양한 기법을 적용한 20여 점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소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는 관점에서 보이는 장면을 그린 〈무제〉(1995)와 산의 능선처럼 보이지만 열쇠의 골을 확대하여 그린 〈현관 열쇠〉(2001)는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What you see is not what you see)”라는 통찰을 수행해낸다. 나아가 캔버스를 오리는 등 작가의 행위가 개입된 〈벽돌 벽 #1〉(1994)과 〈철망 통닭 #1〉(1993)은 회화 평면 너머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김범, 무제, 1995, 캔버스에 잉크, 31 × 31cm. ⓒ김범
김범, 벽돌 벽 #1, 1994, 캔버스에 실, 51.5 × 66cm. 개인 소장. ⓒ김범.
김범, 현관 열쇠, 2001, 캔버스에 아크릴, 22 × 33.5cm. 백해영갤러리 소장. ⓒ김범.
김범, 철망 통닭 #1, 1993, 캔버스에 철조망, 실, 58.5 × 87.5cm. 개인 소장. ⓒ김범.
소박한 표현과 진지한 유머는 관객으로 하여금 무심코 보던 것을 재차 관찰하고 당연시되는 전제를 의심하는 적극적인 감상을 촉구한다.
사나운 개가 벽을 뚫고 달아난 흔적 같은 〈두려움 없는 두려움〉(1991), 난폭한 사람의 집에 초대되어 벌어지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하나의 가정〉(1995) 등은 관객의 인지 작용과 더불어 상상과 현실이 중첩된 중간 지대를 펼친다. 캔버스에 미로 퍼즐을 그린 ‘친숙한 고통’ 연작은 미로 이미지를 통해 일상 속 크고 작은 난관을 은유하는 한편, 실제로 관객 앞에 등장한 일종의 문제가 되어 그것을 해결하려는 본능을 자극한다.
김범, 두려움 없는 두려움, 1991, 종이에 잉크, 연필, 가변 크기. 제공 리움미술관. ⓒ김범. 촬영: 이의록, 최요한.
김범, 무제(친숙한 고통 #2), 2008, 캔버스에 아크릴, 27.5 × 27.5cm. 개인 소장. ⓒ김범
김범, 하나의 가정, 1995, 화분, 도끼, 모종삽, 종이에 연필, 가변크기. 매일유업㈜ 소장. 제공 리움미술관. ⓒ김범. 촬영: 이의록, 최요한.
김범, 무제(친숙한 고통 #5), 2008, 캔버스에 아크릴, 83 × 57.5cm. 매일홀딩스 소장. ⓒ김범.
생명이 없는 사물을 마치 살아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물활론적 사고방식은 김범의 작품세계에 중요한 테마이다.
망치라는 공구가 지닌 생산적 기능성을 동물적 생명력과 연결시킨 〈임신한 망치〉(1995)는 허를 찌르는 해학을 발휘한다. 돌에게 정지용의 시를 낭송해주는 〈정지용의 시를 배운 돌〉(2010), 모형 배에게 지구가 육지로만 되어있다고 가르치는 〈바다가 없다고 배운 배〉(2010) 등의 ‘교육된 사물들’ 연작은 교육과정의 맹점과 교육된 현실의 ‘부조리’를 작가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보여주며 우리는 어떻게 교육되고 있는지, 교육된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지 뒤돌아 보게 한다.
김범, 임신한 망치, 1995, 목재, 철, 5 × 27 × 7cm. 개인 소장. ⓒ김범.
김범, 정지용의 시를 배운 돌, 2010, 돌, 목재 탁자, 12인치 평면 모니터에 단채널 비디오(12시간 11분), 2010, 가변 크기. 매일홀딩스 소장, 제공 리움미술관. ⓒ김범. 촬영: 이의록, 최요한
김범, 청사진과 조감도 연작, 2009. 매일홀딩스 소장. 제공 리움미술관. ⓒ김범. 촬영: 이의록, 최요한.
김범, 쥐와 박쥐 월페이퍼(폭군을 위한 인테리어 소품 중)〉, 2016, 벽지, 가변 크기, STPI 제작. 제공 리움미술관. ⓒ김범. 촬영: 이의록, 최요한.
이러한 모순과 해학은 흥미로운 상상으로 그치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관습과 체제를 의심스러운 것으로 만든다.
‘보고 읽는’ 상상화인 ‘청사진과 조감도’ 연작은 언뜻 보면 학교나 등대와 같이 일반적인 구조를 제시하지만 자세히 보면 비관적 세계관을 드러낸다. 2016년부터 진행한 ‘폭군을 위한 인테리어 소품’ 프로젝트는 불의한 권력자를 위한 인테리어 및 생활 소품을 제작, 판매하고 수익금을 기부하는 실제적인 순환을 만들어낸다. 이번 전시에서는 벽지 설치와 리움 스토어와 협력하여 제작한 다양한 아이템으로 만나볼 수 있다.
김범, 볼거리, 2010, 단채널 비디오, 컬러, 무음, 1분 7초. 제공 리움미술관. ⓒ김범. 촬영: 이의록, 최요한.
다양한 매체와 주제를 가로지르는 김범의 작품세계는 예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끊임없이 반성한다.
〈노란 비명 그리기〉(2012)는 힘껏 소리를 지르며 한 획씩 추상화 그리는 법을 가르치는 튜토리얼 영상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해학적인 상황은 손에 잡히지 않는 이상과 관념을 포착하는 불가능한 과업에 기꺼이 매진하는 예술가의 애환을 드러낸다.
김범, 노란 비명 그리기, 2012,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31분 6초. ⓒ김범.
전시의 제목 《바위가 되는 법》은 김범의 아티스트 북 『변신술』(1997)에 수록된 글의 제목이다. 이 책은 생존을 위한 자기 변화와 가변적인 인간의 모습을 주제 삼아 독자에게 다양한 생물이나 사물이 되는 법을 지시한다. 그 중 ‘바위가 되는 법’은 가공된 정보와 시청각 자극으로 포화된 일상 속 현대인에게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수업을 듣는 사물과 바위가 되려는 인간, 어디론가 달려나간 사나운 개와 해결해야 할 미로가 등장하는 부조리극은 매일 같이 속도전을 치르는 우리에게 김범이 예술로써 내놓은 잠재적인 응답이다.
김범, 백조, 2004, 스티로폼, 모터, 프로펠러, 무선 수신기, 목재, 72 x 79 x 31cm. 개인 소장. 제공 리움미술관. ⓒ김범. 촬영: 이의록, 최요한.
김범, 바위가 되는 법, 2023. 전시 전경. 제공 리움미술관. ⓒ김범. 촬영: 이의록, 최요한.
전시를 기획한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김범은 1990년대 한국 동시대미술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작가이다. 그의 작업은 보이는 것과 그 실체의 간극에 대한 끊임없는 탐색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며 “특유의 재치로 우리를 웃게 만들지만 농담처럼 툭 던진 의미심장한 이미지는 자기성찰의 장을 열어주고 세상을 다르게 보는 법을 제안한다.” 고 밝혔다.
전시와 연계하여 김범의 예술 세계를 다각적으로 조망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린다. <토크 프로그램>은 김범 작가와 전시를 기획한 김성원(리움미술관 부관장), 주은지(샌프란시스코현대미술관(SFMOMA)) 큐레이터)가 이번 전시와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강연 프로그램>은 오은(시인)이 김범의 아티스트북 작품들을 문학적 관점으로 읽어보며 작가의 작품 세계를 새로운 관점으로 살펴 볼 예정이다.
김범, 제조 #1 내부외부, 2002, 혼합 매체, 150 x 200 x 80cm (내부), 94 x 158 x 60cm (외부), 아트선재센터 소장. 제공 리움미술관. ⓒ김범. 촬영: 이의록, 최요한.
또한 김범의 작품 세계를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보는 비평 및 연구프로그램 <크리틱 서클>을 진행한다. 비평가, 연구자, 기획자 등 시각예술분야의 비평과 연구에 관심이 있는 20세 이상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선정된 8명의 참여자들은 연구모임을 진행하고 연구성과는 연구집으로 제작할 예정이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 외에도 한국 동시대미술의 전문가인 연구자, 비평가, 작가 등 다수의 필자들이 다양한 시각으로 김범의 작품 세계를 연구한 글을 묶은 <연구서 형식의 출판물>을 발간하여 심층적으로 작가의 예술 세계를 살펴볼 예정이다.
한편 청소년들이 전시를 쉽고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도록 작품이 던지는 생각거리에 각자의 답을 찾아 작성해보는 <전시 감상 워크북>을 자체 제작하였다. 워크북은 전시장을 방문한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학생 단체에게 무료로 제공한다.
©리움미술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