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TOUR · GALLERY
Broken Images
Tobby Ziegler
토비 지글러
PKM Gallery
PKM 갤러리는 11월 17일부터 12월 23일까지 영국의 현대 미술가 토비 지글러(Toby Ziegler, b.1972 의 개인전 «파괴된 우상 Broken images»을 개최한다. 2019년 PKM 갤러리에서의 전시 이후 4년 만에 한국에서 개최되는 그의 이번 작품전에서는 고전 예술과 현대 기술을 가로지르며 오브제, 이미지, 그리고 공간의 관계성을 유연하게 탐구하는 작가의 회화 신작 8점이 공개된다.
23.11.17 – 23.12.23. 토비 지글러《파괴된 우상》전시전경, 이미지 제공: PKM Gallery
토비 지글러는 고전 예술의 조형 요소와 의미를 현대의 기법과 재료로 해체하는 작업을 통해, 원본이자 데이터라는 양면성을 띠게 된 회화가 대중에게 다가가는 방식과 속도에 집중해 왔다. 작가는 바탕이 될 이미지를 3차원으로 모델링하여 기존의 조형적 특징을 비워낸 후, 젯소를 여러 차례 칠하고 사포질한 캔버스에 매끄럽게 프린팅한다.
그는 이와 같이 프린트된 격자무늬 레이어의 안팎을 우연하고도 유기적인 붓질로 오가면서 회화적인 개입을 하고, 조형 요소들을 다시금 조합해 나간다. 최근 단단하고 매끄러운 알루미늄을 지지체로 삼는 대신 직물 캔버스로 회귀한 그는 이성과 직관, 구상과 추상,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넘나드는 특유의 작업 방식에 더 깊숙이 천착함과 동시에, 오리지널리티의 경계가 무너진 다성(多性) 의 풍경을 우리 앞에 새롭게 펼쳐 보인다.
Toby Ziegler, Nero, 2023. Oil paint and inkjet on canvas, 250 x 180 x 4 cm. Courtesy of the artist & PKM Gallery
이번 전시 «파괴된 우상» 에서 지글러는 디지털 기술이 지닐 수 있는 특성인 비현실성(unreality)을 이용하여 고전 이미지의 회화적인 요소를 과감하게 들어낸다. 전시명이자 이번 개인전의 주요 작품인 “파괴된 우상”은 미국계 영국 시인 T.S. 엘리엇(T.S. Eliot, 1888-1965)의 『황무지(The Waste Land)』(1922)의 한 구절에서 비롯된 것으로, 문명이 야기한 전쟁으로 인해 메마르고 황폐해진 인간상을 드러냄과 동시에 구원의 소망을 담고 있다.
엘리엇의 불규칙하고 파편화된 음률을 따라서, 지글러는 혼종적으로 재구성된 기하학적인 공간 속에 환영처럼 떠도는 파괴된 우상들이 지닐 수 있는 또 다른 아우라를 현재의 성배로서 제시한다.
23.11.17 – 23.12.23. 토비 지글러《파괴된 우상》전시전경, 이미지 제공: PKM Gallery
<Harvest>2023는 작가가 런던 내셔널 갤러리(The National Gallery) 에 소장 중인 작자 미상의 <윌튼 두 폭 제단화 The Wilton Diptych>ca.1395-9 속 색채와 구조를 가져와 모델링한 작품이다. 잉글랜드의 8번째 국왕 리처드 2세(Richard II, 1367-1400)와 그의 통치를 축복하는 성모자와 성인들의 세밀한 형상이 오랜 기간 지니던 의미와 무게감을 던 채, 컴퓨터 화면 속 XYZ 축이 만들어 낸 공간을 가볍게 부유한다.
이와 함께 펄럭이는 국기와 국가의 번영과 축복을 선사했던 천사들은 붉고 푸른 빛의 붓질로만 남아 그 주위를 맴돈다. 작가는 이 와해된 서사를 또 다른 작품 <Idyll>2023 로 발전시키며, 모든 것이 삭제된 공간 속에 점, 선, 면으로만 아스라이 채워진 새로운 목가적 환경을 구현하고 있다. 이처럼 3D 모델링으로 형태도, 의미도 사라져 가벼운 부피만 남은 원본의 이미지는 작가의 즉흥적이면서도 계획적인 회화적 제스처로 덮여, 짙은 안개 속 서서히 드러나는 기억의 형상으로 관람자를 마주한다.
ⓒ PKM Gallery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