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TOUR · GALLERY
Overtone
Sojung Jun
전소정
Barakat Contemporary
오버톤(overtone)은 전소정의 첫 개인전 타이틀이자 그의 3채널 신작 영상 〈오버톤 Overtone〉(2023)의 타이틀이다. 오버톤이 란 기본음을 중심으로 다양한 상음(上音)들이 서로 충돌하며 어우러져 하나의 통합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음악 용어이다. 또한 이 용어는 소비에트 몽타주 형식과 실험에 관한 많은 연구를 남긴 영화감독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Sergei Eisenstein, 1898~1948) 의 ‘상음적 몽타주(overtonal montage)’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에이젠슈타인은 음악의 원리를 이용한 상음적 몽타주 에 대해, 주된 예술적 요소가 다양한 부차적인 예술적 요소들과 함께 작용해 하나의 주된 인상 혹은 통일체(unity)를 구성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상음적 몽타주가 통합적인 분위기나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데 그치지 않고 신체적 지각까지도 수반한다고 역설 하며, 정서적·신체적 느낌을 포함한 총체적 경험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 주장했다.
이와 같은 개념과 원리를 차용한 전소정의 《오버톤 Overtone》에서는 한중일 아시아의 각기 다른 악기들의 소리들의 충돌과 불협화음 속 조화를 찾으며 나아가는 시공간을 통해 이러한 다중의 감각들이 경험될 것이다.
23.11.8 – 24.1.7. 전소정 《오버톤 Overtone》 전시전경, 이미지 제공: Barakat Contemporary
2023년 11월 8일부터 2024년 1월 7일까지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개최되는 전소정의 첫 개인전 《오버톤 Overtone》에서는 그간 ‘소리’에 대한 전소정의 천착이 한층 심도있게 다뤄진 세계관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선 보인 《올해의 작가상 2023》 신작 영상 〈싱코피 syncope〉(2023)의 연결·확장선상에 놓이며, 특히 바라캇 컨템포러리 전시를 위 해 작가가 처음으로 개발한 AR 앱 작품 〈싱코피〉 와 3채널 신작 영상 〈오버톤〉, 조각 작품 〈에피필름 I Epiphyllum I〉 (2023)과 〈에 피필름 III Epiphyllum III〉(2023) 을 통해 시간과 장소, 현실과 가상 공간을 초월하며 조각과 영상, 디지털 데이터 사이의 유기적인 관계망을 만들어 내는 흥미로운 관점을 제안한다.
전소정, 〈오버톤 (영상 스틸)〉, 2023, 3채널 4K 비디오, 컬러, 스테레오 사운드, 1시간 24분
급변하는 현대 자본주의의 속도 안에 거주하면서도 오롯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세계를 빚어 가는 이들이 있다. 전소정은 그간 “비디오가 과연 비가시적인 영역을 비출 수 있는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거나 들리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시각 외 감각의 활성화에 집중했다. 그는 특히 이번 전시에서 선보일 신작 3채널 영상 〈오버톤〉을 통해 “국경을 넘는 신체, 데이터, 식물과 언어의 이동 속도 등을 겹쳐 보면서, 그 가능성의 소리를 따라 아시아 여성들의 이야기와 연대, 그 ‘물질적인 소리’와 ‘음색’에서 찾기를”시도했다.
전시를 준비하며 전소정은 김혜순의 아시아 여행기 『여자짐승아시아하기』(2019)에 등장하는 전설 속 인물 ‘눈의 여자’와 ‘바리데 기’를 자주 언급하곤 했다.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죽은 이들의 인도자를 자처했던 여성인 바리데기의 신화는 비가시적인 세계 안에 가시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변화시키며 여전히 ‘되어가는’ 정체성을 만들어 냈다. 끝없이 변화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증폭해 나가는 소설 속의 ‘눈의 여자’나 ’바리데기’처럼, 전소정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위계가 없고 근원조차 알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을 찾 기 위해 소리를 따라가기로 했다.
전소정, 〈오버톤 (영상 스틸)〉, 2023, 3채널 4K 비디오, 컬러, 스테레오 사운드, 1시간 24분
전소정의 신작 영상 〈오버톤〉은 소리를 따라 남북을 가로질러 이동했던 가야금 연주자 박순아의 여정을 중심으로 한·중·일 아 시아의 금(琴) 연주그룹 고토히메(KOTOHIME)와 이들의 연주를 위해 한국과 독일, 과테말라에서 거주하며 활동하는 세 명의 작 곡가가 모여 ‘세 개의 악장, 음악의 길이, 템포’만을 합의한 채 각각 가야금, 고토, 고쟁을 위한 곡을 만들면서 시작된다. 세 명의 작곡가와 세 명의 연주자가 서로 다른 장소에서 접속하고 대화를 나누며 하나의 곡을 만들어 나가는 긴 여정은 ‘경계를 넘어’라 는 큰 주제 안에서 국경을 초월하여 이동하는 소리와 음색의 물질성을 포착해낸다. 마침내 하나의 호흡으로 연주하는 영상 〈오 버톤〉은 소리를 통해 조화로운 대위법을 경험하는 여정과 같다.
전소정, 〈오버톤 (영상 스틸)〉, 2023, 3채널 4K 비디오, 컬러, 스테레오 사운드, 1시간 24분
크게 세 파트로 구성된 영상 〈오버톤〉의 첫 번째 파트는 ‘음정이 통과하며 일으키는 변화 Melodies of transit’를 주제로 시작되는 일본 고토 연주자 노부코의 솔로 연주, ‘사이’ 또는 ‘이동’의 테마를 다룬 박순아의 북한 가야금 솔로 연주 그리고 마지막으로 ‘파 장 또는 파동 wave’을 주제로 한 중국 고쟁 연주자 샤오칭의 솔로 연주로 전개되면서 한·중·일 금 악기의 연주법, 음색과 음역, 소리의 차이들을 감상할 수 있다.4 이들의 연주 모습은 카메라의 롱숏 기법으로 촬영됐다.
전소정, 〈오버톤 (영상 스틸)〉, 2023, 3채널 4K 비디오, 컬러, 스테레오 사운드, 1시간 24분
두 번째 파트는 세 명의 연주자가 삼각형의 구도로 서로 비켜 앉아 ‘하나의 연주’에 이르기 위해 각자의 악기의 구조와 도구 사용 법, 연주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다. 앞으로 연주될 곡에 대한 이들의 대화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고토(13현), 북한 가야금 (21현), 고쟁(21현) 악기의 구조적인 차이뿐만 아니라, 작곡가의 지시에 의해 개별 곡들에 녹아든 한·중·일의 음악적 요소를 서 로 시도하는 것에 대한 고민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일본 악기 고토에 사용되지 않는 ‘한국의 농현(弄絃)5 기법 을 사용하라’거나 본래 피크를 사용하지 않는 ‘북한 가야금’에 대해 ‘어느 부분에서는 피크를 끼고 연주하라’, 예로부터 여운을 즐 기는 악기였던 중국 고쟁 연주에 ‘음을 멈추고, 가야금처럼 소리를 쪼개라’는 지시 등 서로 다른 음악적 요소들을 반영하고자 하 는 실험적 요소들에 대해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천천히 불협화음 속 화음을 찾아가고자 1, 2, 3악장을 연습한다. 이 파트는 전 소정의 관심사인 ‘매체적 전유’가 강도 높게 드러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연주자들이 나눈 대화 중 흥미로운 지점은 연주를 위해 사용하는 기술과 도구가 다르다는 점이다. 피크의 형태와 그 종류, 재료, 도구를 사용하여 현을 다룰 때 그 각도 차이와, 도구와 맨손으로 연주할 때의 차이, 현의 굵기, 체중과 중력을 다루는 방법 에 따라 각 악기에서 발현되는 음색은 달라지는데, 이는 소리의 물성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연주자들은 서로에 대한 교류와 새로운 학습이라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 하나의 앙상블을 위한 호흡을 맞춰 나간다. 카메라 속 오버 쇼더 숏 – 미디움 숏 – 으로 비 춰진 인물들이 서로 조금씩 비껴 앉아 만든 삼각형의 구도는, 탈중심화된 ‘관점의 부재’라고 할 수 있다. 연주자들은 서로 다른 음악적 관점을 수용하고, 또 즉흥적으로 소리로 서로에게 화답한다. 이로써 각기 다른 소리의 원천에서 추출한 이질적이고 파편적 인 불협화음의 소리가 영상의 숏(shot)에 전면적으로 노출된다. 작가가 사용한 이러한 몽타주 기법은 “서로 충돌하고 상호작용 하면서, 에너지의 전이, 변환, 상승에 따른 형태적이고 의미론적 변이를 수반하며 전혀 새로운 ‘파편적 전체’6를 구성”함으로써 관람자를 정서적, 신체적 감각뿐 아니라 개별적 이미지가 만들어 내는 사유의 시간으로 이끈다.
전소정, 〈오버톤 (영상 스틸)〉, 2023, 3채널 4K 비디오, 컬러, 스테레오 사운드, 1시간 24분
영상의 마지막 파트는 길고 느린 시간과 호흡을 거치며 하나의 즉흥 연주를 완성하는 장면이 초망원 렌즈를 통해 조명된다. 전소 정은 인물을 빗겨가 현을 뜯고 비비고 누르고 때론 멈추는 연주자의 손과 현의 마찰, 악보와 이를 넘기는 손길 등을 망라한 클로 즈업 샷을 통해 소리뿐만 아니라 신체의 확장으로서 ‘도구 – 손’의 물질성과 악기의 물성이 강력한 감각적 충돌을 빚는 현장을 보 여준다. 이때 소리는 시청각적 경험뿐 아니라 물질적 감각과 소리의 진동, 그에 따른 신체의 운동성을 부각시키는 요소로 작용한 다. 연주자들은 상대방의 연주가 빛나게끔 곡의 일부를 생략하거나 역동적 흐름을 바꾸거나 빼고 더하며 주어진 곡이라는 재료 를 가지고 그들 자신도 예측하지 못하는 하나의 소리를 창조해 낸다.
어쩌면 이질적이고 파편적인 불협화음의 소리가 특정한 재 료로서 카메라 렌즈에 담기며 소리의 이동과 기보 위에 없는 여음을 쫓고, 세 명의 연주자와 촬영 감독들의 서로 다른 앵글과 촬 영 속도, 호흡을 반영하도록 의도했다. 소리를 통해 완전한 매체적 전유(appropriation)가 일어나는 순간이다. ‘롱숏-미디움 숏- 클로즈업 숏’으로 전개되는 〈오버톤〉은 점진적 전개의 촬영 기법을 통해 극의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강한 몰입감을 제공한다. “일본에 ‘아훔(阿吽 / AUM): 만물의 시작과 끝의 호흡’이란 말이 있는데 연주하면서 그런 게 있다고 느꼈어요. 호흡 속에서 국경 을 넘은 세계, 그다음 세계라는 것을 빚어낼 수 있다면… 그럴 수 있을 거라는… 그렇게 정말 심오한 무엇인가를 느꼈어요.”7 이로 써 〈오버톤〉은 소리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23.11.8 – 24.1.7. 전소정 《오버톤 Overtone》 전시전경, 이미지 제공: Barakat Contemporary
영상 〈오버톤〉의 막간에는 앞의 전개와는 다소 결이 다른 숏과 숏 사이의 봉합을 발견할 수 있다. 그간의 느리고 긴 호흡의 전통 악기 소리와는 상반된, 현대 도시와 숲의 풍경이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각기 다른 공간 속에 이종 결합한 ‘인간-식물 3d 조각’이 오버랩 되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가속화된 기술 발전과 이로 인한 인간 삶의 변화, 인간과 식물, 데이터의 이동, 소 리 등 언뜻 보기에 관련 없는 것들로, 자의든 타의든 변화와 이동을 겪는 주체들이다. 작가가 만든 ‘인간-식물 조각, 에피필름’은 몸집이 비현실적으로 크거나 아주 작아지는 변신에 능한 정체성을 가진 존재다.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이 가상의 조각은 작가가 3d 가상 공간 안에서 제작한 조각의 데이터 씨드를 AR 앱 〈싱코피〉 에 심어 둔 이미지 컷들이다.8 “이동”, “변형”, “변신”과 같은 유 목적 정체성을 지닌 현실 세계 속 조각들은 싱코피 앱을 받는 누구나 자신이 있는 공간에서 손가락과 몸의 움직임을 통해 조각의 몸집을 키우거나 줄이고, 이동시키면서 원하는 곳에 조각을 배치할 수 있다.
전소정,〈에피필름 I〉, 2023, VR 3D 조형, 알루미늄 캐스팅 ,H 186 × W 120 × D 110cm
전소정,〈에피필름 III〉, 2023, VR 3D 조형, 알루미늄 캐스팅, H 140 × W 120 × D 120 cm
막간의 무빙 이미지에 등장하는 이 디지털 조각이 가상의 공간을 뚫고 나와 갤러리 1층 공간 안에 부유하듯 서 있다. 두 개의 신작 조각 〈에피필름 I〉, 〈에피필름 III〉9이 바로 그것이다. 전소정은 이 두 작업에 대해 “싱코피 앱과 조각 작업은 데이터라는 비물 질을 진동시켜 중력과 무게를 역행하며, 현실 세계에 몸을 가진 물질로 실제 우리 눈앞에 나타난다”고 언급한다.
전통적인 화면의 경계를 초월하여 확장되는 인터페이스 체계의 앱에서 무한한 시공간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러한 경험을 위해 인간의 가장 직관적인 감각 체계인 ‘눈, 손, 소리, 몸’ 등을 사용하도록 하는 전소정의 확장된 작업 세계는 “매체와 함께 사유하는 일과, 그것으로 인해 변화된 신체의 감각들을 질문하는 일, 그리고 그 낙차 가운데 미래를 감지하는 것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 며 “새하얀 공간 속에 물성과 대비되는 빈(void) 공간”을 통해 이루어진다. “기보를 벗어나는 여음이자 틈으로서의 농현 혹은 물 질적 소리와 가상의 틈을 비집고 증폭되어 현실로 탈출한 조각은, 기존의 조각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한 시선, 물리적 공간으로서 의 전시장을 무력화시키며 가속을 변주하거나 탈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떠올리게 한다.” 이 공간 안에서 관람자는 소리와 데이 터의 매개자가 되어 정서적이고 신체적인 총체적 감각을 경험한다. 전소정의 《오버톤 Overtone》은 조각과 조각 사이, 스크린과 스크린 사이의 틀어진 빈 공간을 떠도는 소리와 데이터의 여음과 진동, 그 떨림의 존재를 듣고, 감각하고, 상상하는 전시가 될 것 이다.
ⓒ Barakat Contemporary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