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COLUMN · REVIEW
대전에서 만나는 전시, 이응노미술관
Lee Ung-no
이응노
대전은 ‘노잼 도시’와 ‘빵의 도시’로 불리지만, 그 안에는 풍부한 문화예술 명소가 숨어 있습니다. 대전 예술의 전당과 시립미술관은 다양한 공연과 전시를 통해 예술의 아름다움을 전하며 도시의 다양성을 보여줍니다. 한밭수목원은 자연 속에서 예술적 향연을 선사하며, 대전문화예술회관은 다채로운 예술 행사로 도시를 활기차게 만들죠.
더불어, 오늘 함께 살펴볼 이응노미술관은 한국의 대표 작가 故 이응노의 작품 세계 일대기를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로,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문화적인 여유를 누릴 수 있답니다. 지금부터 이응노미술관의 매력을 자세히 살펴볼까요?
고암 이응노(顧菴 李應魯, b.1904-1989), 이미지 출처 : 이응노미술관
이응노미술관의 주인공 이응노, 그는 과연 누구일까요?
고암 이응노(顧菴 李應魯, b.1904-1989)는 한국현대미술사의 거장 중 한 명으로, 동아시아 서화(글씨와 그림을 아울러 이르는 말)를 활용해 독특한 색채와 형태로 현대적 추상화를 표현하며 한국 예술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입니다.
그의 작품은 전통적인 한국 서예와 동양 철학의 영향을 받아 현대적이면서도 그만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형성했습니다. 이후에도 미술뿐만 아니라 문학과 철학에도 관심을 가지며 높은 평가를 받았죠.
이응노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화려한 활동을 펼쳤는데요. 전통 사군자 작가로서 미술에 입문했던 그는 193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 전반까지 일본에서 유학하며 새로운 산수화풍을 습득하고, 1958년 프랑스로 이주해 <문자추상>, <군상> 시리즈 등 독창적인 화풍을 구축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를 발판 삼아 미국, 유럽 등지에서 다수의 전시를 선보이고, 1964년에는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세르누시 미술관 내에 ‘파리동양미술학교’를 설립하여 프랑스인들에게 서예와 동양화를 가르치며 동양문화를 전파하는 교육자로서도 활동했답니다.
궁핍의 시절, 1960년대 콜라주 작품 시절 (좌) 1952년, <구성>, 캔버스 위의 종이 접착제, 77x64cm, (중간) 1961년, <구성>, 한지와 접착제, 116x89cm, (우) 1952년, <구성>, 캔버스 위의 종이와 접착제, 64x75cm
이응노는 주로 다양한 소재와 재료를 조합하는 *콜라주 기법을 통해 그만의 독특한 작품을 만들어냈는데요서구문물에서 쉽게 접할 수 있던 잡지, 신문지를 주된 재료로 활용하여 만들어진 작품들은 이응노의 창의적인 시각과 예술적 감각이 돋보이게 합니다.
이렇듯 한국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故 이응노 화백의 예술세계를 조명하고 계승·발전시키고자 2007년 5월, 대전광역시에 이응노미술관이 개관했습니다.
*콜라주: 다양한 매체의 이미지나 자료를 조합하여 새로운 예술작품을 만드는 기법
이응노미술관 외관 전경, 출처 : 정다예
이응노미술관에서는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를 넘어 예술에서 삶의 가치를 탐구하고자 소장품 전시, 기획 전시를 꾸준히 선보이며, 각종 작품 및 자료의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이응노의 위상을 정립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연구, 출판, 문화 행사, 교육 및 청년 예술가들의 창작 지원 등 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복합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응노미술관은 2012년 대전고암미술문화재단으로 새롭게 출범한 이후 2016년 현재까지 기증과 구입, 관리 전환을 포함하여 새로이 수집된 소장품은 총 811점에 이릅니다. 대전에 왔을 때 이곳을 방문한다면, 이응노의 70여 년 화업 일대기를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더할나위 없는 기회인 것이죠.
이응노미술관 《동쪽에서 부는 바람 서쪽에서 부는 바람(23.11.28.-24.03.03.)》 전시 전경, 출처 : 정다예
현재 이응노미술관에서 이응노 탄생 120주년을 맞이해 개최된《이응노, 동쪽에서 부는 바람, 서쪽에서 부는 바람》은 국립현대미술관과 이응노미술관이 공동 기획, 협력하여 그 의미가 더 큽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프랑스 퐁피두 센터, 체르누스키 파리 시립 아시아미술관 등 국외 소장품들까지 대거 출품되어 그 기대가 더욱 큰데요. 국내 최초로 공개되는 작품 31점을 통해 기존 상설 전시와는 또다른 이응노 화백만의 폭넓은 작품세계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응노미술관 《동쪽에서 부는 바람 서쪽에서 부는 바람(23.11.28.-24.03.03.)》 전시 전경, 출처 : 정다예
이번 전시에서 주요 키워드는 바로 이응노의 70여 년에 걸친 창작활동을 관통하는 단어인 ‘융합’인데요. 이응노는 동양과 서양, 식민지와 제국주의, 문인화와 민화, 감상화와 장식화 등 사회·문화적으로나, 미술 내적으로 이루는 다양한 요소들의 여러 경계들이 ‘충돌’하며 새롭게 재해석해 창조해낸 그만의 ‘융합’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이를 통해 그의 오랜 유럽 활동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미술의 흐름에서 차별화된 위치에 서며 동아시아 서예의 역사가 이응노 작품의 토대를 이루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응노, <구성>, 1970년대 후반, 종이에 과슈, 80×98 cm, 이응노미술관 소장, 출처 : 정다예
전시작 중, 1970년대 후반에 제작된 <구성>시리즈 작품은 세련된 원색과 빈틈없는 배경 구성과 도형의 배치를 선보여 보다 특별하게 다가오는데요. 기존의 수묵 작품에서 벗어나 또다른 면모로서 강렬한 인상을 줍니다.
한자 ‘좋을 호(好)’를 바탕으로 구성된 작품은 원색의 밝고 따스한 느낌과 가족의 따뜻함이 절묘하게 시각화 되어 동·서양의 문화적 배경과 예술적 감각이 융합되어 이응노 화백 작품의 특징을 두드러지게 볼 수 있습니다.
이응노미술관 《동쪽에서 부는 바람 서쪽에서 부는 바람(23.11.28.-24.03.03.)》 외관 전경, 출처 : 정다예
이응노미술관의 외관의 건축 또한 그 자체로도 예술 작품으로서 빛이 납니다. 로랑 보두엥이 프랑스 출신 건축가로서 고암의 작품 <수(壽)>에서 영감을 받아 건축물을 창조했는데요.
작품 <수(壽)>는 1970년대 고암의 문자추상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한자 ‘<목숨 수(수(壽))>’를 해체, 조합한 이 작품은 고암의 독특한 조형적 해석을 보여주며, 건축물에서도 상징화되어 있습니다. 이응노미술관은 이 작품을 모티브로 미술과 건축의 조화를 선보이며 독특한 예술적 경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응노, <수(壽)>, 1972. 한지에 먹, 콜라주, 274×132cm, 이미지 출처 : 이응노미술관
이응노의 70여 년의 총망라한 화업을 예술적 유산으로 간직하며, 대전 지역에서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자리잡은 이 곳은 사계절 각기 다른 모습으로 예술 애호가들과 방문객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습니다. 이응노 화백의 삶과 예술을 가까이 느껴보고 싶다면, 대전에 방문했을 때 잠시 머물다 가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참고: 이응노 미술관
필자 정다예는 성신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문화예술경영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각종 문화예술기관에서 큐레이터 활동을 통해 전시뿐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문화예술을 폭넓게 전파하고, 예술의 가치와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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