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TOUR · GALLERY
함(咸): Sentient Beings
Group Exhibition
백남준ᆞ윤석남ᆞ김길후
Hakgojae Gallery
VENUE
ARTIST
DATE
MAR 13 - APR 20, 2024
학고재는 우리가 사는 시대의 의미를 묻고자 한다. 우리가 사는 일상 시간은 총천연색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의 의미를 모른다. 50 년 전 사람들의 삶의 의미를 우리는 안다. 그러나 그 삶은 흑백으로 보인다. 앞의 것을 역사의 내부자라고 부르고, 뒤의 것을 역사의 외부자라고 부른다. 역사의 내부자로서 우리는 2024 년을 총천연색으로 보지만, 이 시대의 의미를 모른다. 다만, 좋은 예술에서 시대의 실마리가 보일 수 있다.
학고재는 백남준(白南準, 1932-2006)ㆍ윤석남(尹錫男, 1939-)ㆍ김길후(金佶煦, 1961-) 세 작가의 예술 역정에서 시대의 의미를 찾았다. 이들의 예술은 함께 힘을 합쳐 새로운 길로 나아가려는 의지에서 발화했다. 시대의 의미를 물어 더 나은 내일로 가고자 하는 세 작가의 마음을 ‘함(咸)’으로 표현했다.
학고재, 백남준ᆞ윤석남ᆞ김길후 3인전《 함(咸): Sentient Beings (24.03.13.-04.20.)》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학고재
우리 인식도 이와 같다. 우리는 누구나 처음 가보는 장소가 익숙하지 않다. 처음 가보는 장소, 타지, 외국은 낯설다. 처음 맞이하는 장소를 바라볼 때 완벽한 모습이 뇌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떤 장소에 대한 시간이 누적되고 경험이 반복될 때 비로소 장소의 본질을 파악한다.
어떤 사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대밭을 보았을 때, 대나무 하나하나의 특성이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는다. 대밭을 수시로 와서 대나무를 마주하고 쓰다듬고 바라보아야 대밭의 특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렇듯 사물의 상태가 파악되는 경지를 서양 철학에서는 사물에 대한 진정한 지식을 구했다고 말하며, 동아시아 유학에서는 격물(格物)하여 치지(致知)에 도달했다고 표현한다.
학고재, 백남준ᆞ윤석남ᆞ김길후 3인전《 함(咸): Sentient Beings (24.03.13.-04.20.)》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학고재
함(咸)은 함께(together)라는 우리말에 들어가는 어근이다. 한자 느낄 감(感)과 통한다. 함은 우리의 영원한 고전 『주역(周易)』의 서른한 번째 괘이다. 택산함(澤山咸)이라고도 한다. 동진(東晉)의 사상가 한강백(韓康伯)은 『주역』 서른 번째의 괘까지는 하늘의 도리, 즉 천도에 관한 것이며, 서른 한 번째 괘부터는 사람의 일, 즉 인사에 관련한 괘라고 말한다.
그런데 함괘는 예술의 괘이며, 남녀 사랑의 괘이자, 결혼의 괘이다. 인사 중 으뜸은 예술과 결혼이라는 것이다. 사람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예술과 결혼이라고 볼 때, 예술의 근본 의미는 당연히 화합으로 귀결한다. 함괘의 아래는 태소남(15 세 소년)을 상징하는 간괘(艮卦, 산), 위로는 태소녀(15 세 소녀)를 상징하는 태괘(兌卦, 연못)로 구성되어 만물의 화평을 상징한다. 15 세의 소년과 소녀가 만날 때, 천지가 기뻐하고 만물이 설레기 때문이다. 가죽끈이 세 번 끊어지도록 『주역』을 즐겨 읽었던 성인(공자)은 이 괘와 만났을 때 가장 기뻐했다고 한다.
백남준, W3, 1994, 모니터 64개 가변크기(Dimensions variable with specific installations),《함(咸): Sentient Beings (24.03.13.-04.20.)》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학고재
한편, 간은 우리나라를 상징하고, 태는 서구 사회를 상징한다. 따라서 《함(咸): Sentient Beings》 전시는 현대미술이 나아갈 방향을 묻고, 우리의 사유가 현대미술과 만나서 창조할 수 있는 상승효과(synergy)를 의미한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위대한 중국학자 제임스 레게(James Legge, 1815- 1897)는 함괘를 ‘influence(영향)’와 ‘wooing(구애)’으로 번역했다. 서로 선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가 인생의 의미라고 해석한 것이며, 구애(求愛)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백남준 Nam June PAIK, 구-일렉트로닉 포인트 Sfera-Punto Elettronico, 1990, 혼합 매체 Mixed media, 320x250x60cm
학고재는 전시 주제에 걸맞은 작가로 세 명의 작가를 선정했다. 첫째는 백남준이다. 백남준은 말년에 『주역』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주역』에 나오는 함괘의 가치는 소중하다. <W3>ㆍ<구-일렉트로닉 포인트(Sfera-Punto Elettronico)>ㆍ<인터넷 드웰러(Internet Dweller)> 세 작품이 출품된다.
백남준, PAIK Nam June, 인터넷 드웰러 Internet Dweller- mpbdcg.ten.sspv, 1994, 혼합매체 Mixed media, 109.9(h)x131.9×65.9cm
64 개의 TV 모니터로 이루어진 <W3>는 『주역』의 64 괘를 뜻하기도 하거니와 미래의 인터넷 세상을 예견한다. <구-일렉트로닉 포인트>는 1990 년 작품으로 냉전 종식 후 펼쳐진 당시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제창한 세계 화합의 가치를 기리는 작품이다. <인터넷 드웰러>는 1994 년 인터넷으로 지식정보가 보편화되어 인류가 평등의 세계를 건설할 것이라는 작가의 믿음을 반영한다.따라서 백남준은 우리가 세계(우주)와 함께한다는 뜻을 함축한다.
윤석남 YUN Suknam, 1,025 사람과 사람 없이 1,025 With or Without Person, 2008, 혼합재료 Mixed media, 가변크기 Dimensions variable
두 번째 작가는 윤석남이다. 윤석남은 동아시아 여성주의 예술의 최고봉에 오른 작가로 나날이 가치를 더하고 있다. 작가는 2008 년에 완성한 연작 <1,025: 사람과 사람 없이>를 출품한다. 버려진 나무를 수집하여 버려진 유기견의 형상을 깎아(조각하여) 만들고 그 위에 먹으로 유기견을 그려서(기입하여) 완성한 작품이다. 이 연작은 사람과 동물이 동등하다는 뜻을 함축한다.
학고재, 백남준ᆞ윤석남ᆞ김길후 3인전 《함(咸): Sentient Beings (24.03.13.-04.20.)》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학고재
세 번째 작가는 김길후이다. 김길후는 회화계의 프로테우스로 불린다. 변화무쌍한(protean) 창조성과 실력을 갖추어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회화를 추구하고 있다. 김길후의 예술 화두는 ‘현자(賢者)’와 ‘바른 깨우침(正覺)’의 의미를 회화로 표현하는 방법에 자리한다.
작가는 그림의 진실한 추구에서 여래(如來)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우리 내면에 이미 깃들어 있다. 김길후 작가의 회화 세계에 염화미소(拈花微笑)의 진정한 의미가 담겨있다. 따라서 김길후의 회화 세계는 현자(부처)와 함께한다는 뜻이다.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다 허망하니 만일 모든 형상이 형상 아님을 보면 곧 여래(如來)를 발견하리라.
학고재, 백남준ᆞ윤석남ᆞ김길후 3인전 《함(咸): Sentient Beings (24.03.13.-04.20.)》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학고재
학고재는 ‘함(咸)’을 ‘influence’나 ‘wooing’으로 보지 않고 ‘sentient beings’로 읽고자 한다. ‘sentient beings’는 중생(衆生)과 같은 말이다.
호주 출신의 위대한 철학자 피터 싱어(Peter Singer, 1946-)가 1975 년에 제창한 개념으로, 그는 우리가 인간 중심적 휴머니즘을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감각이 있어서 외부 세계를 느끼는 모든 대상은 품계의 구분 없이 우주의 중심으로 대접받아 마땅하다는 뜻을 지닌다.
함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주가 함께 느끼니 모든 사물이 함께 살아가고, 성인이 사람의 마음을 감화하니 온 세상이 화평하다.
ⓒ Hakgojae Gallery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