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TOUR · GALLERY
시대의 유령과 유령의 시대
J. Park
박종규
Hakgoje gallery
박종규(J. Park, 朴鍾奎, 1966-) 작가의 첫 번째 학고재 전시회 《시대의 유령과 유령의 시대》가 2023년 3월 15일부터 4월 29일까지 46일 동안 열린다. 박종규는 컴퓨터에서 발생하는 노이즈에 주목하여 노이즈를 확대하거나 코드 변환하여 회화로 옮기는 작업을 해왔다. 우리가 매일 겪고 있는 상황을 미술로 풀어내고 있다.
이 전시회에서 박종규 작가는 최근에 제작한 회화, 조각, 영상 총 40점을 출품하며 학고재 본관과 신관에서 선보인다. 미술관급 대형 전시다. 아트바젤 홍콩, 광주비엔날레 등 중요한 미술 행사가 진행되는 기간에 전시회를 배치하였다. 이 기간에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 주요 미술인에게 작가를 알리기 위한 포석이다. 박종규 작가는 2022년 5월 학고재 갤러리와 전속 계약을 체결했으며, 국내외 프로모션을 통하여 미래를 함께 개척하기로 했다.
학고재 갤러리 박종규 개인전 《시대의 유령과 유령의 시대》 전시 전경(본관), 이미지 제공: 학고재 갤러리
현재 현대미술의 겉모습을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1) 센세이셔널리즘(sensationalism), 2) 장관주의(spectacularism), 3) 모더니즘의 확대 재생산(re-modernism), 4) 이들의 절충주의(eclecticism)의 범주를 넘지 못하고 있다. 미디어의 영향과 상업주의의 열풍이 이러한 풍조를 조장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여 새로운 영역을 열고 역사의 문을 두드린 화가로 우리는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1932-)를 손꼽는다. 회화와 사진과의 관계, 매체 사진의 전용, 절취(cutting), 색채 추상과 흑백 추상의 관계를 철학적으로 사유하여 위대한 회화 형식을 구축한 것으로 유명하다. 리히터의 시도는 매체와 매체 사이의 관계와 차이를 사유한 최초의 시도이다. 또 한 사람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1945-)가 있다. 독일의 역사, 문화, 나치 시대와 홀로코스트를 다루거나 성서와 형이상학적 주제로 인간의 본질을 묻기도 한다. 독일 근현대사를 조명하기도 하며 건물 내부 전체를 회화로 변용하기도 한다. 전자는 회화의 형식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돌파하려는 작가이며, 후자는 내용의 심오함으로 회화의 위대성을 재확인하는 작가이다. 박종규 작가는 전자가 지향하는 태도를 견지한다.
학고재 갤러리 박종규 개인전 《시대의 유령과 유령의 시대》 전시 전경(신관 B1), 이미지 제공: 학고재 갤러리
정서를 표현하는 작가가 있다. 내면을 드러내는 작가도 있다.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를 다루는 작가가 있다.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다루는 작가도 있다. 그런가 하면 역사를 다루는 작가도 있다.
박종규 작가는 인간과 컴퓨터의 관계를 다룬다. 박종규 작가는 매체 발전 역사에 관하여 사유하면서, 우리 시대의 키워드는 컴퓨터, 네트워크, AI라고 진단한다. 박종규 작가는 “인간의 역사는 신화에서 이성으로, 이성에서 테크놀로지로, 테크놀로지에서 로봇으로 향하는 역사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발언한다. 컴퓨터 테크놀로지가 극한까지 발전했을 때, 인간은 어떠한 모습으로 변모할까? 로봇과 같으리라는 것이 박종규 작가의 생각이다.
박종규 작가는 컴퓨터에서 발생하는 노이즈에 주목한다. 우리가 보는 컴퓨터 화면은 긍정적 신호, 즉 시그널로 운용된다. 그런데 가끔 부정적 신호인 노이즈가 발생하기도 한다. 화면이 손상되거나 소리가 지연되는 등의 현상이 노이즈이다. 박종규 작가는 컴퓨터의 노이즈를 수집하여 확대한 후 캔버스에 옮긴다.
학고재 갤러리 박종규 개인전 《시대의 유령과 유령의 시대》 전시 전경(신관 B2),
이미지 제공: 학고재 갤러리
학고재 갤러리 박종규 개인전 《시대의 유령과 유령의 시대》 전시 전경(신관 1F),
이미지 제공: 학고재 갤러리
컴퓨터의 노이즈는 부정적 가치이지만 확대되어 화면에 옮겨졌을 때 너무나도 정연한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다. “노이즈는 부정적 가치와 반대로 오히려 아름다운 형식이다.” 박종규 작가는 다시 말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컴퓨터에 노이즈가 발생한다는 사실 속에 담겨있는 행간의 의미이다. 아직 휴머니즘이 살아있다는 뜻이다. 컴퓨터가 완전무결해질 때 인간은 로봇이 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박종규 작가가 노이즈의 가치를 중시하는 이유이다. 박종규 작가는 인간과 컴퓨터의 관계에 관하여 사유하면서 인류의 미래와 새로운 회화의 돌파구를 찾는 첫 번째 작가이다.
학고재 갤러리 박종규 개인전 《시대의 유령과 유령의 시대》 전시 전경(본관),
이미지 제공: 학고재 갤러리
학고재 갤러리 박종규 개인전 《시대의 유령과 유령의 시대》 전시 전경(본관),
이미지 제공: 학고재 갤러리
한국 모더니즘 추상회화는 김환기(1913-1974)에서 단색화로 발전하여 후기 단색화로 다양화된다. 김환기, 유영국처럼 자연을 추상화하는 등 외부 세계를 다루다 단색화에 이르러 내면의 수양과 정신 등 우리의 내부 세계를 다룬다. 후기 단색화에서는 회화의 본질 자체를 다룬다.
즉, 평면성의 극한을 추구한다. 박종규는 인간과 테크놀로지의 관계에 관한 철학적 사유로써 추상회화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학고재 갤러리 박종규 개인전 《시대의 유령과 유령의 시대》 전시 전경(본관), 이미지 제공: 학고재 갤러리
학고재 본관에는 비정형 회화 연작이 새롭게 등장한다. 목재를 CNC커팅으로 깎아서 그 위에 캔버스를 덧입힌다. 회화가 평평한 평면 위에서 벌어지는 게임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뒤집기 위한 시도이다. 박종규 작가는 프랑스의 대표적 현대미술 운동인 쉬포르 쉬르파스
(Support-Surface)를 이끌었던 수장 클로드 비알라(Claude Viallat, 1936-)의 제자이다. 비알라는 사각형 지지체(캔버스) 없는 회화를 추구한 예술가이다. 회화의 본질 규명, 즉 회화의 본질은 평면성에 있다는 주장에 문제를 제기하는 회화이다. 작가는 회화 역시 입체 예술과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학고재 갤러리 박종규 개인전 《시대의 유령과 유령의 시대》 전시 전경(신관 1F), 이미지 제공: 학고재 갤러리
박종규는 2022년 2월 대구시 중구 동성로에 위치한 스파크 빌딩 전광판에 영상 작품 <수직적 시간>을 상영했다. 어느 날 전광판을 작동시키는 컴퓨터에 노이즈가 발생하여 모래폭풍 장면이 분홍색으로 바뀌었다. 그 장면이 마치 만개한 벚꽃과 진달래를 연상시켰다고 한다. 작가는 완벽한 테크놀로지로 향해가는 우리에게 노이즈야말로 휴머니즘을 보장하는 보루라고 주장한다. 작가는 노이즈가 발생한 영상의 정지 화면을 그대로 화폭에 옮겨 노이즈가 제공해준 꽃의 정원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시대의 유령과 유령의 시대 Phantom of Time and Time of Phantom, 2023, Single-channel video(단채널 영상), 3min 5sec
박종규는 소리꾼 민정민(1987-)이 부른 「심청가」와 구음의 절창 장면을 영상에 담는다. 작가는 음악의 파장을 시각 이미지로 변환하여 회화 작품으로 전환한다. 또, 그는 <나를 찾아서>라는 영상작품을 전시장 바닥에 투사한다. 두 대의 CCTV에 찍힌 관객은 작게 축소되어 20초 지연되어 움직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진리는 역사의 축적을 통해서 드러나며 나 자신은 미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우치기 위해 이 작품을 제작했다고 한다. 「심청가」는 우리 전통과 역사에 대한 경탄을 의미한다.
이미지 제공: 학고재 갤러리
이미지 제공: 학고재 갤러리
지하 2층에서는 대규모 회화 연작 <수직적 시간>을 선보인다. 컴퓨터에서 발생한 노이즈를 확대하여 화폭에 옮겼지만 혼란스럽지 않고 오히려 질서정연하다. 질서와 혼란, 미추, 선악 등 가치의 구분은 우리 인간에 달려있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가치의 생산 주체로서의 인간의 심리와 지각, 정신의 위대성을 말하고 있다. 진리는 피안의 저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 주체인 우리의 내면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박종규는 “우리의 일상을 평범하고 진부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새롭고 귀중하게 바라볼 때, 수직적 시간이 찾아온다. 나는 컴퓨터의 노이즈에서 인간의 위대함을 바라본다. 일상을 귀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예술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라고 말한다.
작가 소개
박종규 작가의 모습, 이미지 제공: 학고재 갤러리
박종규는 1966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계명대학교에서 서양화과를 졸업한 후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DNSAP와 연구과정을 밟았다. 대구미술관(2019), 영은미술관(2018), 홍콩 벤브라운파인아츠(2017)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포항시립미술관(2018), 광주시립미술관(2010), 러시아 니즈니노브고로드 국립현대미술센터(2016), 모스크바 트라이엄프 갤러리(2016), 후쿠오카시 미술관(2003) 등 국내외 유수 기관에서 개최한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서울), 광주시립미술관(광주), 대구미술관(대구) 등 국내 주요 기관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