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TOUR · GALLERY
SEE STAR
Laure Prouvost
로르 푸르보
Gana Art
가나아트는 벨기에 브뤼셀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로르 푸르보(Laure Prouvost, b. 1978)의 개인전 《Laure Prouvost: SEE STAR》를 가나아트 보광에서 4월 27일부터 개최한다. 본 전시는 21점의 평면, 조각, 비디오, 태피스트리 등 푸르보 예술세계의 핵심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으로 구성된다.
로르 푸르보는 위에 나열한 매체뿐 아니라, 사운드,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형태로 실험적인 전시를 펼친다. 이미지와 함께 언어를 유희하며 실제와 가상을 오가는 내러티브가 푸르보의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대표적인 특징이다. 가령 2013년 터너상 수상 시에 영상작품 <Wantee>로 가상인물인 할아버지의 실종을 다뤘다면, 2015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루퍼트미술관에선 할아버지를 찾는 관객참여형 땅굴파기 퍼포먼스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처럼 일찍이 독특한 작품성을 인정받은 푸르보는 터너상 외에도 2011년 막스마라 여성예술상을 수상하고, 2019년 베니스비엔날레 프랑스관 대표작가, 2023년 브뤼셀 KANAL-퐁피두센터 벽화 커미션 작가에 선정되는 등 괄목할 만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국내에선 작년 한 해에만 부산비엔날레와 에르메스 아틀리에서 관객을 만난 바 있다. 이번 전시에선 <SEE STAR>, <Reliques>, <This Means> 시리즈를 통해 연대와 공존에 대한 고민을 유쾌하게 풀어낼 예정이다.
본 전시명과 동명의 시리즈 <SEE STAR>는 자매를 의미하는 “sister”의 동음이의어로서 여성의 연대를 이야기한다. 바닷속을 은유하듯 파란 화면에는 서로 엉긴 문어 다리가 가득하다. 문어는 실종된 할아버지, 카펫과 도자기를 만드는 할머니, 세계 곳곳에 여행사를 차리는 삼촌 등 푸르보 이야기에 단골로 등장하는 모티프 중 하나로서 작가의 중요한 대리물이다. 2019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선보인 <Deep See Blue Surrounding You>에서도 주요 소재로 등장한 문어는 수많은 촉수로 만물을 감각하고 외부와 소통하는 힘을 가진 주체다.
세 점의 <SEE STAR> 속 문어 다리는 손과 유방의 형상으로도 변신하며 “IN ONE ANOTHER(서로서로)” “TOGETHER AS ONE(함께 하나로)” “NO MORE FRONT TEARS(더 이상 울지 않아)” “MORE SEE(더 자주 보기)”라고 쓰인 연대의 깃발을 들고 있다. 또한 모든 것을 끌어안고 생명을 보듬는 너른 품이 되어 다른 생물에게 젖을 먹이기도 한다. 관람객은 캔버스를 뚫고 부착된 실크 장갑에 직접 손을 넣어 “Sister”들의 연대에 동참할 수 있다. 한편 연대의 메시지를 강조하듯 4-5개의 캔버스가 하나로 이어진 물리적인 형태나, 실크 장갑이 3차원의 깃발 작품을 잡고 있는 장면도 중요 관람 포인트다.
MOTHER got drunk from this glass before making an other human brain on the 4th of February, 2019,
Glass and sign: acrylic and varnish on board Relique: glass, Sign: 21.2 x 26.8 x 1.8 cm, Sign: 8 3/8 x 10 1/2 x 0 3/4 in.
© Laure Prouvost; Courtesy Lisson Gallery.
작가 개인의 출산 경험이 녹아있기도 한 <SEE STAR> 연작의 뒤쪽 한편에는 <MOTHER got drunk from this glass before making an other human brain on the 4th of February>라는 다소 긴 제목의 조각이 설치된다. 좌대 위 파란 유리컵 위로, 제목의 글귀가 사인 형태로 적혀있다. 유리컵은 언뜻 보기엔 평범한 오브제지만 특정한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문장으로 말미암아 강력한 마법을 가진 ‘성유물’로 재탄생한다. 작가에게 말과 글은 “흙과 다름없는 일종의 물리적 재료”로서, 적재적소에 쓰여 예술작품이 된다. 특히 관람객의 상상력을 일깨우는 데 언어만큼 강력한 도구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Reliques> 시리즈는 바로 그 점을 노린다. 이번 전시에는 잉태의 순간에 함께한 유리컵 외에도 할머니의 욕조에서 반짝이며 떠오른 수상한 티백이 함께 전시된다. 그밖에 우연한 곳에서 마주쳐 최면을 거는 <THIS SIGN WANTS TO ESCAPE WITH YOU DEEPER>과, 두 마리의 ‘전능한 비둘기’ <Empowered Pigeon>도 관람객의 상상을 무한대로 자극한다.
23.04.27 – 05.30, Laure Prouvost 개인전 《SEE STAR》, 가나아트 나인원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가나아트)
푸르보는 사물, 언어 그리고 지각의 논리를 더 깊이 파고든 끝에 고유한 언어를 창조하기에 이른다. <This Means> 시리즈는 “What does this mean(이것은 무엇인가)”이란 물음에 “This means ooo(이것은 ooo다)”라는 답으로 구성된다. 마치 아기의 언어 배우기 놀이카드를 떠올리듯, 이번엔 글과 함께 사물이 아닌 이미지를 병치한다. 평범한 놀이카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작가가 단어와 이미지를 상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연결한다는 것이다.
<This Means> 세계에선 염소가 “당신”을, 오렌지가 “사랑”을, 장갑 한 짝이 “상실”을 의미한다. (그리고 파란 유리컵은 다름 아닌 “엄마”다!) 여기서 발생하는 단어와 이미지의 불협은 관람객의 기억과 상상을 가동한다. 예컨대 염소를 좋아했던 당신을, 그런 당신이 까주던 오렌지를, 그러다 어느 날 장갑 한 짝을 흘려두곤 돌아오지 않는 당신을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야기는 관람자의 수만큼 무궁무진해질 수 있다.
This Means Tableau, 2019, Tapestry, 290 x 425 cm, 114 1/8 x 167 3/8 in., ed. 1 of 3 + 1 AP
© Laure Prouvost; Courtesy Lisson Gallery.
<This Means>는 군더더기 없이 무언가를 명확하게 지시하지만, 각 사람에게 가닿을 땐 계속해서 의미를 이탈한다. 이 지점에서 푸르보는 인간 사회의 거대 약속 체계인 언어가 사실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를 되짚는다. 그러나 작가는 회의적이지 않다. 오히려 오독과 오판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들의 끈을 이으며 새로운 약속들과 또 다른 상호 작용의 여지를 발견한다. 꼭 단일한 것으로 묶이지 않고도 서로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넘어다보며 그로부터 다시 연대를 모색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드로잉, 태피스트리, 영상으로 변주된 총 7점의 <This Means> 시리즈가 공개된다. 관람객은 전시장 2층에 문어 다리 형태로 조성된 미로를 따라, 어린 시절로 돌아가 언어를 새로이 익히는 느낌으로 작품을 만나게 될 예정이다.
23.04.27 – 05.30, Laure Prouvost 개인전 《SEE STAR》, 가나아트 나인원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가나아트)
연대의 메시지를 담은 <SEE STAR>부터, 소통과 공존을 이야기하는 <Reliques>와 <This Means>까지, 로르 푸르보가 이곳 가나아트 보광에 풀어놓은 이야기들은 관람자와 만나 더욱더 길을 잃고 여기저기로 뻗어 나간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것은 오롯이 관람자의 자유다. 작가는 ‘서로 달라도 괜찮다, 오히려 다르기 때문에 재미있고 풍부하다’고 말한다. 연대는 모순되게도 서로 다름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역설하는 듯하다. 5월 30일까지 계속되는 본 전시가 그러한 사유와 경험을 선사하길 바란다.
ⓒ Gana Art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