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TOUR · GALLERY
내 짐은 내 날개다 (Meine Flügel sind meine Last)
Ro Eunnim
노은님
Gana Art Center
가나아트는 자연물을 작업의 근간으로 힘찬 생명력을 표현하여 ‘생명의 화가’로 불리는 노은님(Ro Eunnim, 1946~2022)의 추모전 《내 짐은 내 날개다(Meine Flügel sind meine Last)》를 4월 28일(금)부터 5월 28일(일)까지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최한다.
노은님의 작품 40여점이 공개되는 이번 전시는 ‘자유’를 향해 내면의 에너지를 거침없이 터트렸던 50여 년간의 예술 여정을 조망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특히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 작가 노은님이 이전의 투쟁적이고 강렬한 작품에서 읽히는 깊은 고독과 방황에서 벗어나 끝내 ‘날개’를 달고 자연으로 자유롭게 날아가는 과정을 작품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23.04.28 – 05.28, 노은님 추모전 《내 짐은 내 날개다(Meine Flügel sind meine Last)》, 가나아트센터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가나아트)
1946년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난 노은님은 1970년 독일로 이주한다. 간호사로 일하다 우연한 기회에 가지게 된 첫 전시회는 1973년 한국인 최초로 국립 함부르크 조형예술대학(HFBK)에 입학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대학에서 바우하우스(Bauhaus) 출신이자,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와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의 제자였던 독일 표현주의 거장 한스 티만(Hans Thiemann, 1910~1977)에게 사사했다. 이후 한국 작가로서는 최초로 국립 함부르크 조형예술대학 정교수로 임용되어 20여년간 재직했다. 활약상은 계속 이어졌다. 1990년 프랑스 파리 피악(FIAC)에 선보였던 〈해질 무렵의 동물〉은 프랑스 중학교 문학 교과서에 수록되었고, 1997년에는 함부르크 알토나 성 요한니스 교회(St. Johannis-Kirche)의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진행했다. 또한 2019년 11월에는 독일 미헬슈타트 시립미술관(Stadtmuseum Michelstadt)에 노은님만을 위한 영구 전시실이 마련되었는데, 이는 비(非)독일 출생의 현대미술 작가로는 유일한 업적이라 화제가 되었다.
23.04.28 – 05.28, 노은님 추모전 《내 짐은 내 날개다(Meine Flügel sind meine Last)》, 가나아트센터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가나아트)
2022년 10월 노은님이 하늘의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날아가고, 2023년 생명의 기운이 충만한 봄에 가나아트는 《내 짐은 내 날개다》라는 제목으로 예술가 노은님을 추모하는 전시를 연다. 전시명은 작가가 2004년 발표한 동명의 그림 에세이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노은님은 예술가로서의 자유를 얻기까지, 현실적으로 또 내면적으로 겪었던 고난, 곧 ‘짐’이 결국은 ‘날개’가 되어 스스로를 흐르는 물이나 공기와 같이 가볍고 자유롭게 한다고 책에서 서술한 바 있다.
가나아트는 2019년 개인전 《힘과 시》를 시작으로, 해마다 다양한 접근으로 작가 노은님의 예술 세계 탐구를 시작했다. 작업을 관통하는 화제인 “생명”과 “자연”에 대한 이야기, 삶의 계기마다 변화하는 “색”의 운용 등이 그 주제가 되었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깨달음”이다. ‘생명의 화가’ 노은님이 남긴 궤적에서 1989년의 다큐멘터리 제목에 등장하는 “짐”과 “날개”가 2004년 수필집에 다시 화두로 등장하며 자유를 논하는 것에 주목했다.
23.04.28 – 05.28, 노은님 추모전 《내 짐은 내 날개다(Meine Flügel sind meine Last)》, 가나아트센터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가나아트)
이번 전시는 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작업의 영역을 확장해 온 노은님의 1973년부터 2021년까지의 작업들을 만나볼 수 있다. 먼저 전시는 함부르크 미술대학 시절의 초기 드로잉과 80년대 초반의 색면추상 작품들, 다큐멘터리 〈내 짐은 내 날개다(Meine Flügel sind meine Last)〉와 80년대 퍼포먼스 사진 기록들 그리고 작가의 ‘자유’에 관한 에세이 일부를 소개하며 시작한다. 이어서 2, 3전시장에서는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여 응축된 에너지를 생생히 쏟아낸 1980~90년대 대형 회화와 2000년대 이후 색과 선의 사용, 생명의 형태에 대해 훨씬 자유로워진 회화와 모빌 등을 선보인다.
이번 추모전은 대작(大作) 위주의 초기 작업들을 집중 조명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주요 작품으로는 검은 종이에 흰 분필로 짧은 선만을 그려 화면을 구성한 1976년 작품 〈무제〉와 80년대 초에 떠난 아프리카 여행에서 느낀 생명과 자연에 대한 인상을 검은 배경에 거침없이 쏟아낸 가로 길이 8.5m의 작품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후〉(1983)가 있다. 또한 원시미술에 대한 흥미와 탐구, 즉흥성과 단순함의 표현에 몰두해 있었던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의 대형회화도 소개된다.
노은님, 해질무렵의 동물, Animal Sunset, 1986, Acrylic on paper, 198x260cm ⓒ 노은님 (이미지 제공: 가나아트)
가장 유명한 것은 프랑스 중학교 문학 교과서에 수록된 〈해질 무렵의 동물〉(1986)인데, 사실 이 작품은 ‘초배지를 4시간 동안 붙이고 그림은 5분만에 완성했다’는 작가의 말과 함께 노은님 회화의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한 즉흥성과 단순성을 극명히 읽을 수 있기에 더 중요하다. 그 외에도 노은님의 예술에서 이례적인 표현인 서정적 색감이 돋보이는 〈하얀 눈의 황소〉(1986)와 아프리카 원시미술의 현생과도 같은 〈밤중에〉(1990)를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다.
(이미지 제공: 가나아트)
(이미지 제공: 가나아트)
‘날개’와 ‘자유’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던 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 시기의 작품으로는 마치 불교의 ‘윤회(輪廻)’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 〈무제〉(1998)가 있다. 수레바퀴가 연상되는 검은 도형 위에 붉은색 물감으로 손바닥을 돌아가며 찍어낸 강렬한 인상의 작품이다. 당시 작가의 머릿속을 지배했던 생과 죽음, 자연의 섭리에 대한 고뇌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빨강과 짙은 녹색, 노랑과 파랑 등의 강렬한 색채 대비, 단순하면서도 강한 붓터치 등 파울 클레의 조형 방식과 유사한 측면이 인상적인, 가로 330cm, 세로 262cm의 작품 〈무제〉(2003) 앞에서는 그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은 한층 자유로워진 표현력과 과감함을 느낄 수 있다.
노은님, 무제, Untitled, Mixed medai on paper, 2003, 262×329.5cm ⓒ 노은님 (이미지 제공: 가나아트)
노은님은 “나는 그림 속에서 세상의 많은 것들을 깨달았고, 내가 큰 대자연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작은 모래알 같은 존재임을 알았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있는 것, 없는 것, 사는 것, 죽는 것 모두 마찬가지다” 라고 말하며 해탈의 연장선상에서 작업을 전개해왔다. 그 “깨달음”에 대한 전시 《내 짐은 내 날개다》전을 개최하며, 가나아트는 맑고 순수한, 그 누구도 근심이 없는 노은님의 예술 세계가 창조된 깊고 긴 과정을 보여주려 한다. 이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를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예술 본연에 대한 고뇌를 하며 작업해 온 노은님이 자연의 섭리를 깨닫고 본질을 탐구한 예술가임을 다시 짚어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또한 관람자에게도 작가 앞의 벽이 사라진 어느 날의 새벽처럼, 골몰하던 나의 괴로움이 결국 나의 자유를 위한 ‘날개’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다가오기를 기대한다.
ⓒ Gana Art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