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TOUR · GALLERY
여기 앉아보세요 · Hardboiled Breeze
WOOSUNG LEE · JI KEUN WOOK
이우성 · 지근욱
Hakgojae Gallery
한국현대미술의 미래라고 평가받고 있는 이우성(b. 1983), 지근욱(b. 1985) 작가의 개인전이 8월 9일(수)부터 9월 13일까지(수) 각각 학고재 본관과 신관에서 개최된다.
이우성은 사실적인 형상회화로 현재 우리의 삶을 다루고, 지근욱은 질서정연한 추상화를 펼쳐서 우리를 미시와 거시의 세계로 안내한다. 이우성은 홍익대학교 회화과에서 학사, 한국종합예술학교 평면전공 전문사를 졸업한 후 30세부터 우리나라 주요 미술관 및 레지던시, 해외 유수 공간에 초대받은 작가다. 특히 2018년 광주비엔날레 《상상된 경계들》에서 주목받으면서 한국현대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근욱은 홍익대학교 판화과와 런던 예술대학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에서 아트&사이언스 석사를 취득했다. 2017, 2018년도 크리스티 홍콩 정기 경매에서 열린 특별전에 참가해서 추정가를 크게 뛰어넘는 가격에 작품이 낙찰되어 세계적 주목을 받은 바 있다.
2023.08.90 – 09.13, 이우성 ‘여기 앉아보세요’ · 지근욱 ‘하드보일드 브리즈’ 전시전경, 학고재 갤러리 제공
한국현대회화의 역사가 70년(sensu lato 100년)을 맞이하는 현재, 철학자 지안니 바티모(Gianni Vattimo, b. 1936)나 아서 C. 단토(Arthur C. Danto, 1924-2013)의 논의를 정설로 인정한다면, 우리는 탈역사(post-history)의 국면에 돌입했다. 탈역사란 역사적 성질을 벗어났다는 뜻이다.
역사는 거대담론으로 쓰인다. 거대담론은 인간해방, 자유의 쟁취, 절대정신의 구현 등 여러 가지 모습으로 존재해왔다. 역사에서 거대담론, 즉 그랜드 내러티브가 더는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술사도 거대담론이 사라졌다. 유파가 없고 담론이나 개념도 더는 통용되지 않는다. 자본과 인터넷 등 매체에 모든 것이 빨려들고 있다. 탈역사는 무한 자유를 허용한다. 대신 방향성이 부재한다. 무엇을 해도 좋지만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어서 고통스러운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에 이우성과 지근욱은 비록 외피는 다를지언정 자유 속에서 평정을 찾고, 방향의 부재라는 혼란 속에서도 사랑이라는 변하지 않는 가치를 찾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2023.08.90 – 09.13, 이우성 ‘여기 앉아보세요’ · 지근욱 ‘하드보일드 브리즈’ 전시전경, 학고재 갤러리 제공
이우성은 인간에 대한 사랑을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지근욱은 인물균(人物均), 즉 사람과 사물(외부세계, 우주)는 모두 소중하다라는 생각을 펼친다. 이 두 작가는 형식에서도 독창적이며 아름다운 경지에 도달했다. 같은 세대의 여타 서구 작가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세계관을 또한 형성했다. 한 달 뒤에 열리는 2023년 제2회 프리즈 서울과 24회를 맞이하는 키아프 서울에 맞추어 학고재가 세계에 제시하는 한국현대미술의 방향을 바로 이우성 작가와 지근욱 작가의 개인전으로 잡은 이유다.
이우성 개인전 《여기 앉아보세요》
이우성, 붉은 색과 오렌지 빛 실루엣으로 그린, 2023, 캔버스에 아크릴릭 과슈, 91x91cm
이우성의 전시회에 들어서는 순간 처음 드는 생각은 이렇다. “한국 사람들이 이렇게 멋있었단 말인가?” 이우성은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만나는 살아있는 사람, 함께 한 시간 및 사건을 가장 소중한 가치로 생각한다.
이우성이 그리는 작품 속 인물은 친구나 친지, 아니면 일상에서 만났던 누군가이다. 역사적 위인, 특출난 재능을 가진 사람, 명문가의 일은 작가의 관심이 아니다. 오로지 작가가 만나서 함께 현재를 살아 숨 쉬며, 울고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을 그린다.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테우스(B.C. 65 – B.C. 8)가 “카르페디엠(carpe diem)”, 즉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다.”라고 가르쳤던 명언을, 이우성은 매시간 묵묵하게 실현하고 있다.
이우성,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2023, 천에 아크릴릭 과슈, 210x210cm
이우성,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2023, 천에 아크릴릭 과슈, 블랙 제소, 210x210cm
이번 개인전 《여기 앉아보세요》는 2018년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동굴에서 발견된 4만 년 전 동국벽화의 손바닥 스텐실 그림에 감화되어 제작한 걸개그림 형식의 작품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로 시작한다. 스페인 알타미라, 프랑스 라스코,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울산 반구대는 시공간에서 차이가 나지만, 하나로 통하는 보편성이 있다. 당시 사람들이 느꼈던 삶(일상)의 환희와 자연의 불가사의한 힘에 대한 예찬이다. 이우성은 옛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의 역동성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아름다운 신호를 후대에 남기는 것이 회화의 본령이라고 말한다
이우성, 해질녘 노을빛과 친구들, 2023, 자투리로 만든 천에 아크릴릭, 260x600cm
이우성은 <해질녘 노을빛과 친구들>이라는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에서도 강렬한 메시지를 제시한다.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개념은 부분과 전체의 문제이다. 작가의 단일한 회화 작품은 부분으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는, 그림 개체가 모두 만나 전체를 이룰 때, 비로소 시대와 삶의 의미가 드러난다고 말한다.
이우성은 모든 부분이 만나 전체를 이루어 구성하는 서사의 구조를 제시하여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청장년의 삶과 미의식을 대변한다. 모두가 힘들고, 우울하고, 좌절하는 시간과 만난다. 그러나 쉬지 않고 연속되는 일상의 현재를 기꺼이 받아들일 때 삶이라는 전체, 우리라는 전체의 모습이 드러난다. 이우성의 자화상 연작 또한 인상적이다. 작가의 일상적 이야기를, 만화의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인물로 단순화하여 그린 연작이다. 식사, 작업, 일, 여가 등 모든 그림에 위트가 넘쳐난다.
지근욱 개인전 《하드보일드 브리즈》
지근욱, 교차-형태(복사), 2023, Mixed media on canvas, Dimensions variable (approx. 300x790cm)
여기 정미(精微)하고 섬세한 붓질로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를 모두 다루는 화가가 있다. 우리는 분자가 무엇인지 볼 수 있어도 원자가 무엇인지 모른다. 원자를 넘어 아원자 입자나 쿼크에 이르면, 이것은 추정 상의 개념이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그것이 파장(wave)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볼 수 없는 세계를 회화로 나타내서 아름다운 형식을 극한까지 밀고 나가는 작가와 마주한다.
지근욱, 상호-파동 019, 2023, Mixed media on canvas, 50x50cm
지근욱은 색연필로 새로운 추상회화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 모색은 잠재성에서 구체적으로 현실화하고 있다. 현실은 이번 개인전 《하드보일드 브리즈》를 통해서 더욱 굳건해진다.
하드보일드(hard-boiled)란 용어는 문학용어이다. “계란을 완숙하다”라는 뜻의 하드보일드는 그 뜻이 확대되어, 현실을 비정하고 냉엄하게, 때로는 군더더기 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문학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 한편, 브리즈(breeze)는 아주 기분 좋게 느껴지는 부드러운 바람, 즉 미풍(微風)을 뜻하며, 우리말로 남실바람ㆍ산들바람ㆍ건들바람ㆍ흔들바람 등으로 번역된다. 보티첼리의 명화 <비너스의 탄생>에서 바람의 신 제피로스가 입으로 불어 비너스를 바다로 보내는 산들바람과도 같다.
지근욱, 임시의 테 001, 2023, Colored pencil on canvas, 160x160cm
지근욱, 상호-파동 004, 2023, Mixed media on canvas, 40x40cm
지근욱, 교차-형태 001, 2023, Acrylic and colored pencil on canvas, 45x45cm
이번 전시회에 출품되는 <임시의 테(Inter-rim)>와 <상호-파동(Inter-wave)>, <교차-형태(Inter-shape)> 연작은 캔버스 화면에 색연필로 연한 색의 심층(깊숙한 화면)과 짙은 색의 표층(겉 화면)의 다른 층위(레이어)를 주어서 미묘하게 화합하는 경지를 그려낸다. 어떠한 미학적 수식이나 철학적 담론을 배제하고, 오로지 좋은 그림 자체만을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하드보일드’이면서 비정하고 냉엄하기는커녕 극히 온유하고 부드러운 화면과 곡선, 운율을 잘 살려 표현된 ‘브리즈’이다.
<교차-형태> 연작은 문학적이고 은유적이면서도 물리학적 저편에서 벌어지는 물질적 진실을 추상화시키기도 한다. 지근욱의 신작에서 양자역학의 미시세계나 우리 은하 밖의 거시영역을 연상해도 틀리지 않는다. 《하드보일드 브리즈》는 언어적으로나 개념적으로는 형용모순을 이루지만, 지근욱의 회화의 세계에서는 절실한 실존의 무게를 더할 나위 없이 잘 표현하고 있다.
©Hakgojae Gallery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