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COLUMN · MARKET
'갤러리'와 '작가'의
건강한 파트너십이란?
KEYWORD
Artist 작가
Gallery 갤러리
DATE
AUG 23, 2023
CONTRIBUTOR
우리는 팬데믹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 미술시장을 번영을 함께하는 동시대의 중심에 있습니다. 금리 인상으로 인한 경기 침체로 미술계가 조정기에 들어간 와중에도 신생 화랑과 새로운 아트페어, 또 컬렉터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작가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고, 그 중심에는 바로 갤러리가 있죠.
미술시장의 몸집이 커진 만큼 컬렉터의 취향 또한 다양해져 늘 신선한 미감을 갈망하고 탐색하기에, 기획자와 갤러리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쯤에서 작가와 갤러리의 관계에 대한 담론을 한 번쯤 짚고넘어가 볼 만한데요.
개인 대 개인의 관계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아트 비즈니스 특성상 대부분의 갤러리와 작가와의 관계는 구두계약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불어 고유의 개성을 가진 갤러리들의 다양한 경영방식만큼이나 제도화시키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보니, 작가가 갤러리와 관계에서 혼란이나 마찰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아트부산2023에 참여한 러브컨템포러리아트 부스 전시전경, 사진제공: 러브컨템포러리아트
“작품 발표를 할 기회만 주셔도 영광입니다.”
어느 예술가의 열정을 믿고 갤러리의 호주머니를 탈탈 털어 잠도 아껴가며 유명 작가로 만들었으나, 개인전은 여기서 하더라도 판매는 다른 곳에서 한다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껏 키워놨더니…” 절대 하지 않으려고 했던 그 말을 하고 싶지만, 참아야 하는 어느 갤러리 대표의 한탄이 들리기도 하죠.
반면에 작가의 입장에서는 갤러리의 정산 문제로 애를 먹인다든지, 계산법이 이상하거나 제 역할을 다 하지 않는 갤러리들에게 상처 입은 작가들의 이야기도 무수히 들려옵니다.
작가에게는 ‘당장 눈앞의 이익보다 멀리 내다보는 갤러리를 만나세요.’ 하는 조언도 있는가 하면, 어떤 갤러리 대표들은 작가의 작품도 중요하지만, 인성도 본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상투적인 말 같지만 이것은 생각보다 중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대구아트페어2022에 참여한 러브컨템포러리아트 부스전경, 사진제공: 러브컨템포러리아트
어떤 작가는 특정 화랑과 독점적인 관계를 맺고 모든 업무를 위임하는 반면, 어떤 작가는 되도록이면 많은 화랑과 다양한 전시 기회를 잡기도 합니다. 이처럼 요즘의 젊은 작가들은 타의든 자의든 파트너십을 맺는 스타일을 통해 개인의 성향을 드러내기도 하는데요. 이 부분은 정답 없이 각각의 장단점이 있으므로 작가의 성향에 맞게 결정하면 되지만, 작가와 갤러리 사이의 의리와 진정성이 필요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죠.
특정 갤러리에서 작가를 발굴해 미래를 내다보고 수년간 투자해 마침내 컬렉터들의 주목을 받게 되면, 아이러니하게도 그제야 작가 섭외에 목마른 다른 갤러리들도 수많은 러브콜을 보내게 됩니다. 신진작가일 때에는 전시 기회를 한번 잡는 것이 힘든데, 주목받기 시작하면 여기저기에서 물밀듯이 연락이 오는 것이 현실이죠.
그렇다면 주목받기 시작한 작가는 자신을 수면 위로 드러나게 만들어준 갤러리에게 의리를 지켜야 할까요? 아니면 몰려드는 기회를 잡기 위해 둥지 밖으로 날아가야 할까요? 의리를 지키면서도 모든 기회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몸담은 갤러리에 대한 마음이 흔들리면 그때부터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기에, 작가에겐 이런 저울질을 하는 것이 때론 곤혹스러울 것입니다.
Gagosian Beverly Hills to Present Works from Cy Twombly’s Final Decade Opening September 15, 2022_Installation view_Artwork ⓒ Cy Twombly Foundation, Photo Jeff McLane
갤러리 입장에서는 작가를 일찍 알아본 안목과 투자만으로 무제한 독점권을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결국 작가에게 결정권이 있는 것인데 이러한 갤러리의 권리는 제도권 안에 있지 않죠. 여기서 우리는 한국보다는 유럽에서 보편화된 ‘마더 갤러리(Mother Gallery)’라는 개념을 주목해 볼 수 있습니다.
마더 갤러리는 작가의 주요 갤러리 또는 신진작가 때부터 함께 한 갤러리로서 작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탄생시켜준 제1전속 화랑 이라는 뜻이기도 한데, 작가는 자신의 마더 갤러리와 작품 가격을 결정하고, 활동의 방향성을 논의하고 만들어 갑니다. 마더 갤러리는 젊은 작가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작품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작품 활동 이외의 주요 일을 도맡아 행하게 되지만 작가를 가두어 두지는 않죠.
이처럼 마더 갤러리는 작가와 작가를 처음 발굴해 주었던 화랑에 대해 단순한 계약 관계 이상으로 두터운 신뢰, 의리가 있는 긴밀한 관계를 의미하고, ‘작가의 성장’이라는 같은 목표를 두고 나아갑니다.
The Andy Warhol Foundation for the Visual Arts, Inc./Licensed by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George Etheredge for The New York Times
작가의 커리어를 위해서라면 미술계의 다양한 플레이어와 협업하기도 하는데요.
타 갤러리와 전략적으로 손을 잡을 수도 있고, 다양한 무대에서 작품이 보이더라도 작품은 작가의 작업실로부터가 아닌 마더 갤러리의 수장고로부터 오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경우 마더 갤러리는 작품 판매에 대한 일부 수수료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각각의 갤러리와 작가 간의 관계는 고유할 수 있으며, 계약의 조건 또한 다양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마더 갤러리’라는 용어의 사용만으로는 독점 계약을 의미하지 않는 만큼, 법적 의미보다는 관계적 용어에 가깝죠.
Larry Gagosian with Untitled, 2005, by Cy Twombly © Tyler Mitchell. © Cy Twombly Foundation, courtesy of Gagosian
미국 표현주의 작가로 유명한 사이 톰블리(Cy Twombly, b.1928-2011)는 메가 갤러리의 수장인 래리 가고시안(Larry Gagosian)과 20여 년을 일하면서 어떠한 계약서도 쓰지 않고 우정으로 함께 해오기도 했는데요.
갤러리에서 계약서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신뢰와 인간적인 유대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물론 계약서는 필요하지만, 그보다 큰 힘을 가지는 것이 결국 신뢰를 바탕으로 맺어진 ‘인간관계’인 것이죠.
현대의 작가들은 지금에서야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외면받았을지도 모릅니다. 다수의 비난 속에서도 소신 있게 작가를 위해 지원하는 것이 갤러리스트이며, 작가는 이들의 존재로 인해 작품을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고, 작업을 멈추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갤러리가 모험심을 갖고 언제 투자금을 회수할지 모르는 실험적인 작가를 발굴할 수 있게 하는 힘, 작가가 작업실에서 팔릴지 모르는 도전적인 작품을 창조하게 하는 힘도 바로 이러한 끈끈한 신뢰관계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오래 지속되고 축적되는 것에는 영원성이 있죠. 갤러리와 작가가 만나 수십 년간 동시대 미술사를 함께 써 내려가는 것은 최고의 걸작을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가고시안이 없다면 시장은 매우 약해질 것입니다.
그는 상업 시장에 수완이 매우 좋습니다.(…)
가고시안의 매력은 미술시장이 1차원으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는 겁니다.”
-James Roundell (London Dealer)-
필자 임규향은 회화과 학부를 졸업하자마자 20대에 미술시장에 뛰어들어 삼청동에서 러브컨템포러리아트 갤러리를 운영하고있는 10년차 갤러리스트이다. 다수의 국내외 동시대 작가를 소개하고 있으며 미술시장에서는 이례적으로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여 최초로 유튜브 온라인 미술시장을 개척했으며, 저서로는 미술시장에 생생한 이야기를 담은 《Sold Out》이 있다.
ⓒARTiPIO Editor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