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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Shin Ja
이신자
MMCA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김성희)은 한국 섬유예술의 1세대 작가 이신자의 대규모 회고전 《이신자, 실로 그리다》를 9월 22일부터 2024년 2월 1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개최한다.
《이신자, 실로 그리다》는 이신자(1930~ )의 예술 세계 전반을 재조명하고자 마련되었다. 작가는 1970년대 섬유예술이라는 어휘조차 없던 시절에 ‘태피스트리’ (tapestry)를 국내에 소개하는 효시적 역할을 하며, 한국 섬유예술의 영역을 구축하고 확장한 주역이다. 이번 회고전에서는 초기작부터 2000년대 작품 90여 점과 드로잉, 사진 등의 아카이브 30여 점을 통해 이신자의 생애와 다채로운 작업 전반을 새롭게 읽어보고자 한다.
23.09.01 – 24.01.09,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소장전 《피카소 도예》포스터
이신자는 다양한 섬유 매체를 발굴하고 독자적인 표현 기법을 적용한 작품 활동으로 한국 섬유예술계의 이정표를 세웠다. 이신자의 초기 작업에는 전통적인 섬유 소재 대신 밀포대, 방충망, 벽지, 종이와 같이 일상의 재료와 한국적 정서가 담긴 평범한 소재가 활용됐다. 이로 인해 일반적인 공예 기법과 틀에서 벗어나 당시 “대한민국 자수는 이신자가 다 망쳤다”라는 혹평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작가는 파격적인 시도들로 1956년(제5회)과 1958년(제7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하며 30세에 국전 초대작가가 되었다. 1972년 국전에 출품한 <벽걸이>(1971)는 국내에 처음 선보인 태피스트리 작품으로 전통적인 태피스트리의 단조로움을 극복하고 독특한 재질감과 입체적 표현을 만들어냈다. 이후 작품에는 강렬한 색상의 대비로 신비감을 더하고, 간결하지만 대담한 기하학적 구성을 통해 섬유조형의 가능성을 확장했다.
이신자, <지평을 열며>, 2005, 모사, 금속, 나무; 태피스트리, 73×93 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전시는 이신자의 작품세계가 형성되는 과정을 4부로 나누어, 각 시기별 한국 섬유미술사의 변천사와 작가의 작품세계의 변모상을 함께 살펴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특히 작품의 뒷면까지 볼 수 있는 입체적인 전시 연출을 통해 작품을 제작하는 일련의 과정을 연상할 수 있는 동시에, 견고한 밀도와 디테일로 작품을 완성한 이신자의 공예가로서의 면모도 확인할 수 있다.
이신자, <노이로제>, 1961, 면에 모사, 합성사, 화학염료; 납방염, 아플리케, 자유기법, 158×92.5 cm, 작가 소장
1부 <새로운 표현과 재료> (1955-1969년)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초기 작품들로, 작가의 거칠지만 자유롭고 대담한 시도들을 엿볼 수 있다. 작가는 실로 짜고, 감고, 뽑고, 엮는 다양한 방법으로 내면화된 자연의 정서와 정경들을 대담하게 단순화하여 짜임새 있는 구도를 선보인다. <장생도>(1958), <도시의 이미지>(1961), <노이로제>(1961) 등 크레파스나 안료를 칠하고, 천을 덧대는 기법인 아플리케(appliqué)를 하여 캔버스의 바탕을 새롭게 바꾸어 나가며 한국 섬유미술의 폭과 깊이를 확장한 시기이다.
이신자, <숲>, 1972, 면사, 마사, 나무; 태피스트리, 144×63 cm, 작가 소장
2부 <태피스트리의 등장> (1970-1983년)은 작가가 1972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를 통해 태피스트리를 최초로 국내에 소개한 시기이다. 작가는 어릴 적 할머니의 베틀에서 익힌 직조의 과정을 토대로, 틀에 실을 묶어 짜는 최초의 태피스트리 작업을 완성했다. <숲>(1972), <원의 대화 I>(1970년대), <어울림>(1981) 등은 전통적 태피스트리의 단조로움을 피하고 올 풀기로 독특한 표면 질감을 유발하는가 하면, 이미 짜인 실을 밖으로 돌출시키는 부조적 표현으로 입체적인 질감을 형성한 작품을 선보인다.
23.09.22 – 24.02.18, 이신자《이신자, 실로 그리다》전시전경, 이미지 제공 : 국립현대미술관
3부 <날실과 씨실의 율동> (1984-1993년)에서는‘한국 섬유미술의 개화기’라 일컬을 만큼 국내 섬유 미술계가 새 국면을 맞이한 시기의 작품을 다룬다. 작가는 <숲의 왕자>(1987)와 같은 의상디자인과 무대막 등 작업 범위를 넓히고 자유로운 표현 방법을 구사했다.
동시에 작가 자신이 구현하고자 하는 회화적 분위기와 서사적 의미를 완벽하게 담을 수 있는 태피스트리 작품 <추억>(1985>, <가을의 추상>(1987), <기구 I>(1985), <메아리>(1985)와 같이 붉은색과 검은색의 대비로 80년대 초 배우자 사별로 인한 상실과 절망, 생명에 대한 외경, 부활의 의지를 담아낸 작품을 소개한다. 이 시기의 정점을 이루는 작품으로 길이가 19m에 달하는 <한강, 서울의 맥>(1990-1993)도 감상 할 수 있다.
이신자,, <산의 정기>, 1996, 모사, 합성사, 금속; 태피스트리, 60×86 cm, 작가 소장
4부 <부드러운 섬유-단단한 금속> (1994-2000년대)에서는 자연을 관조할 수 있는 하나의 창으로 금속 프레임을 배치해 3차원 세계를 구성함으로써 자연에 대한 확장된 시각을 보여준다. 특히 <산의 정기> 시리즈(1990년대)에서는 “어린 시절 울진 앞바다에서 본 바다 풍경과 아버지 손을 잡고 오르던 산의 정기엔 파도 소리, 빛, 추억, 사랑, 이별, 이 모든 것이 스며있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평생을 지배해 온 주제인 자연의 영원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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